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세탁기와 냉장고는 한국에서 큰 대접을 받았다. 굴지의 가전 메이커인 GE 냉장고와 월풀 세탁기는 대표적인 선호 아이템이었다. 특히 월풀의 드럼식 세탁기는 '톱 로더'(통돌이식) 세탁기에 익숙한 우리 주부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어느 대기업이 한때 월풀 세탁기와 냉장고를 수입'판매했는데 예약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인기였다. 하지만 요즘 젊은 소비자에게는 '월풀'이라면 덩치 큰 원형 욕조를 먼저 떠올린다. 월풀 가전제품이 우리 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나타난 결과다.
1911년 '업튼 머신 컴퍼니'로 시작한 이 회사는 1949년 '월풀 코퍼레이션'으로 이름을 바꿨다. 창업 100년을 넘긴 현재 월풀을 포함 키친에이드, 젠에어 등 제품 브랜드만 16개에 이르는 미국 최대 가전회사로 성장했다.
부동의 1위를 달리던 월풀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바로 한국 제품의 급부상이다. 월풀은 2016년 삼성에, 지난해에는 LG에 추월당했다. 미국 최대 가전 유통업체 '베스트 바이'가 집계한 '최고 등급' 세탁기에 삼성은 23개, LG가 24개다. 그러나 월풀은 고작 5개다. 본바닥에서조차 밀리자 월풀은 한국 견제에 불을 댕겼다. 2011년 덤핑 의혹을 제기해 높은 반덤핑 관세를 물린 것이다.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는 이 조치가 WTO 협정 위반이라며 되레 한국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월풀의 한국 제품 밀어내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12년과 2015년에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지난해 5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청원서를 내면서 한국과의 악연이 더 깊어졌다. 그저께 트럼프 행정부가 삼성'LG 세탁기에 '관세 폭탄'을 안긴 것도 월풀이 배후다. 트럼프의 최측근인 제프 페티그 회장이 '미국 우선주의' 심리를 꼬드긴 것이다.
월풀은 홈페이지에 포천지 선정 '8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을 보란 듯 자랑한다. 연매출 210억달러에 전 세계 9만3천 명의 임직원 수에서 보듯 거대 기업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선택하려는 미국 소비자의 욕구마저 무시하고 경쟁 회사 죽이기에 나선 기업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세이프가드 조치에 국제사회의 냉소가 쏟아지는 이유다. 덩칫값을 못하는 건 월풀도 미국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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