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2015년 홍상수 감독이 제작한 영화다. 1부에서 속물, 찌질남으로 묘사되던 주인공(정재영 분)이 장면을 바꾸어 2부에서는 지적이고 상식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시선을 살짝 비틀어 정반대의 해석을 도출해 내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이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듯한 이 책은 시점을 바꾸어(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한국 경제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경제 흐름이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개발, 성장시대 때 통용되던 '성공 방정식'이 현실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재정부 전'현직 관료 6명이 대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저자들은 해외의 경제 대가 7인을 지상(紙上)으로 초대해 그들의 혜안을 빌려 우리 경제가 고민해야할 일곱 가지 주제를 살피고 있다.
1장에서는 우리나라의 재벌 문제를 살펴본다. 기업 이론의 대가 로널드 코스(Ronald Coase)의 견해를 통해 우리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재벌은 대중들이 '욕망하면서 혐오하는 존재'다. 근대화의 주역이라는 찬사를 받아왔지만, 한편에서는 정경유착과 비리의 온상이라는 비난도 함께 받고 있다.
코스는 '비용 이론'의 관점에서 기업의 순기능을 강조한 학자다. 기업가의 자원 배분 역할을 평가한 그의 이론은 정부 개입을 비판하고 재벌을 옹호하는 맥락에서 활용되었지만 그렇다고 '정부 무용론자'도 아니었다. 코스는 '현재 우리 재벌들이 자원을 배분하는 기업가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며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2장에서는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로부터 저성장의 원인과 대책을 듣는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발전의 동인을 설파한 혁신 전도사로 유명하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저성장의 장기화 추세다. 저성장을 운명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다시 한 번 재도약을 꾀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저자는 '삶의 질'이라는 화두 앞에서 GDP 성장률 중심의 정책을 유지해 나갈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혁신 방향을 찾아 나설지 고민해야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경제학자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를 호출하는 3장에서는 저소비가 문제인지, 과소비가 문제인지를 살펴본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소비 부족을 재앙으로 보고, 반대로 개인의 입장에서는 분수에 넘치게 소비하는 게 문제라고 한다. 소비 경제 주체들이 모인 국가 경제가 오히려 저소비로 홍역을 앓고 있는 것도 난센스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의 소비를 증가시키는 것이 효과가 있는지, 효과는 지속 가능한지 궁금해진다. 갤브레이스는 부자들의 무분별한 과소비가 문제라고 지적하며 개인의 과소비를 부추기지 않고 경제 전체의 수요 부족을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우리에게 디플레이션과 맞설 용기'지혜가 있는지 살펴보는 4장에서는 윌리엄 필립스(William Daniel Phillips)가 등장한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기억에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는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경제 성장률을 올리려면 물가 상승을 감수해야 한다는 '필립스 곡선'은 이제 재해석되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인플레이션을 감수하고서라도 성장률을 올려서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일본과 유로존 국가들은 마이너스 금리라는 초강도 대책을 써가며 인플레이션을 유도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는 과연 디플레이션을 감당할 체력을 갖추었느냐'고 묻는다.
로버트 배로(Robert Barro)의 '조세 평탄화 이론'이 적용되는 5장에서는 정부의 재원 조달이 대해 살핀다. 재정수단으로 '조세'를 선택할지 '부채'를 선택할지 고민이 크다. 과거에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세수가 저절로 늘어났기 때문에 국가 부채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로존 재정 위기에서 보듯 국가 부채 문제는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우리도 부채가 누적되는 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증세를 할 것인지, 국채를 발행할 것인지는 중요한 선택이다. 배로의 '조세 평탄화 이론'을 바탕으로 이 문제를 살펴본다.
6장에서는 리처드 칸(Richard Kahn)의 혜안을 빌린다. '재정 승수'(Fiscal multiplier)를 통해서 경기 침체와 불황의 시기마다 구원 투수를 자임한 정부 재정의 역할에 대해 살펴본다. 경제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언제나 정부와 시장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지지하는 케인스주의를 부활시켰고, 각국은 빚을 내서 경기를 뒷받침하는 재정 확대 정책에 매진했다. 현재의 장기 침체 국면에서 또다시 재정을 구원 투수로 내세워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마지막 7장에서는 행동경제학 대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나서 어떤 경제 정책이 좋은 정책인지 살펴본다. 오늘날 정책 입안자들은 요리책에서 레시피를 고르듯 정책들을 선택하지만 그 결과는 초라하다. 현실의 경제 주체들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일관성도 없기 때문에 그런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경제 정책은 태생부터 허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소화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많은 경제 이론들이 존재한다. 이 책의 지은이들은 그동안 익숙했던 경제 정책의 틀을 깨고 새로운 경제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자고 말한다. 한국의 최고 엘리트 관료들이 세계 경제 석학들의 지혜와 이론을 빌려 우리의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은 해법 도출의 유무를 떠나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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