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박 작가의 '메이드 인 경상도'라는 만화가 있었다. 경상도 토박이로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으며 경상도에 살고 있는 작가가 '지역감정'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감각기관에 여과된 것들을 가감 없이,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작품이었다. 정치적 성향과는 상관없이 같은 경상도 출신인데도 잘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어 꽤나 유익하고 즐거웠다. 그러고 보니 내가 경상도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뭔지 알고 싶어졌다.
관광명소에 가면 으레 음식점이 즐비한 거리가 있다. 가장 흔한 유형의 이름이 특정한 지역의 이름을 끌어다 쓰는 것이다. 음식점 이름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지명은 북경(베이징)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만리장성. 여기에는 논리적 일관성이 있으니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익숙해 하는 장소(지역)를 식당의 이름으로 쓸 경우 그 장소와 연관된 사람들이 그 식당에 들어올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식당의 이름은 '서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단일지역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게 서울이고 관광객들 가운데도 서울에서 간 사람이 가장 많을 것이니 서울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이 유명 관광지의 식당 이름을 '서울'로 지을 가능성이 있다.
외국에 있는 한식당 이름에도 서울이 압도적으로 많다. 남대문이나 아리랑, 신라도 있지만 서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88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되었을 때 "쎄울!"이라고 누군가 외친 외마디 고고성의 영향 때문일까. 어떻든 지명에는 사람을 잡아끌고 주의를 환기하게 하는 힘이 있다. 실상 대단히 크다. 지역, 장소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될 만한 일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 또한 그러니까.
지명, 또는 지역은 크나큰 자산이자 자원이다. 그것을 무기로 해당 지역의 명성과 신뢰를 높이고 정서적인 친근감을 형성하며 관광지로 발전시키는 일은 지역 주민이나 지자체장이 꿈꿔 마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타산지석이 될 만한 사례는 있다.
일본의 북해도나 규슈 지방에서는 농축산물, 임산물, 해산물에 거의 반드시 지역 산이라는 표기를 하고 있다. 환경오염이 심한 대도시는 대소비지이기도 해서 청정 자연산, 지역 명물이나 특산물이라는 '지역 앞세우기'는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지역 특산물이 어떻게 해서 명물이 되었나 하는 식의 사연을 가지고(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김을 양식하기 시작해서 '바다 이끼(海苔)'의 이름이 김이 되어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는 식으로) 더 짭조름한 마케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 단위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것도 있다. 국산, 혹은 한국산으로 표기되는 공산품이 꽤 있다. 상주 곶감, 영광 굴비 하는 식으로 지역 단위의 대표성을 가진 농축해산물을 내세우는 경우는 보편화되었다. 하지만 중간 단위라 할 수 있는 경상도, 호남, 호서, 영동 같은 상품은? 제주 감귤 정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경상도에서 '메이드 인 경상도'로 세계에 내세울 만한 게 뭘까.
여행자유화가 이루어진 지난 세기 1990년대 초반, 처음으로 일본에 여행을 갔다가 규슈의 관문에서 게시판을 하나 본 적이 있었다. 규슈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분야와 품목을 열거하고 있었는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부품과 중간재까지 포함해서 수백 가지나 되었다. 생각해 보면 경상도나 대구에서 세계 제일로 내세울 만한 게 꽤 되지 않을까? 굳이 서열로 매길 필요가 없는 세계 유일의 문화, 정신적인 자랑거리는 왜 없을 것인가. 그것이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곳을 마음의 태 자리로 삼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자부심을 줄 것은 자명하다. 그것만으로도 게시 비용은 건지고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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