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두 개의 얼굴

예쁘고 잘생긴 얼굴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선천적 기질인 듯하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신생아실 영아들도 얼굴 예쁜 간호사를 보면 동공이 커진다고 한다. 동공 확대는 호감을 느낄 때 나타나는 무의식적 신체 반응이다. 이처럼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얼굴 생김새에 민감하다. 어떤 대상에서 이목구비와 닮은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얼굴 이미지부터 떠올린다. 점 세 개 찍어놓은 도형을 보고도 얼굴을 연상하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이를 활용한 도형이 바로 이모티콘이다.

또한 인간은 불특정한 어떤 대상을 볼 때 익숙한 형상을 찾아내려는 심리 기제를 갖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고 부른다. 금오산 능선의 부처님 옆얼굴, 9'11 테러 당시 연기 속 악마, 외계 인공물 논란을 일으킨 화성 인면암 등이 파레이돌리아의 사례로 꼽힌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사람 얼굴을 한 새 '인면조'가 단연 화제다. 개회식에 등장한 인면조는 기이하고 생경한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불교 전승에 따르면 인면조는 극락정토에서 사는 새인데, 마음이 열린 자만이 그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듣는다. 삼국시대 벽화에서 모티브를 따왔으며 자연과 사람, 동물이 어우러지는 상생'평화의 퍼포먼스라는 부연 설명이 전해지면서 인면조는 단숨에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화제와 논란을 부른 얼굴이 더 있다. '김일성 가면'이다. 북한 응원단이 젊은 남성 얼굴 가면을 쓴 채 노래를 불렀는데, 국내의 한 언론사가 '김일성 가면'이라는 기사를 내면서 논란을 촉발시켰다. '최고 존엄'의 얼굴을 가면으로 쓰는 행위만으로도 북한에서는 총살감이라는 탈북민들 증언으로 유추해 볼 때 이 기사는 오보일 가능성이 높다. 해당 언론사도 기사를 삭제하고 공식 사과했다.

그런데 일부 야당은 색깔론을 폈다. 자유한국당은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쓰고 평창올림픽 경기장을 휘젓고 있다"고 논평했고, 국민의당은 "우리 국민과 언론이 김일성 가면으로 인식하면 김일성 가면인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정부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 야당이 해야 할 일이지만,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김일성 얼굴이라고는 목에 혹 달린 뚱뚱한 노인네 사진밖에 못 접했던 남한 사람들이 꽃미남 가면에서 김일성을 떠올린 심리 기제가 사뭇 흥미롭다. 사람들에게는 보는 것을 믿는 게 아니라 믿는 것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 역시 파레이돌리아의 장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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