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가구 남짓한 작은 마을인 전라북도 임실군 진뫼마을. 이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타지에서 살다가 그리움을 견디다 못해 다시 어머니 품 같은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있다.
김도수(60) 씨에게 고향은 그리움을 넘어 상사병에 걸릴 만큼 애틋한 곳이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에게 팔린 집 주인을 12년 동안이나 쫓아다니며 되팔아 달라고 부탁했다. IMF 이후 겨우 되찾게 된 고향 집을 이젠 20년 동안 주말마다 와서 돌본다. 고향에 꿀단지라도 숨겨놨나 싶어서 보면 그런 것도 아니다. 고향에만 오면 어머니와 함께 밭일하던 추억, 손으로 맛나게 찢어주시던 김치, 살을 문대며 좁은 방에서 답답한 줄도 모르고 살았던 그 기억들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김도수 씨에게 고향은 곧 어머니이다.
김도수 씨의 집 낮은 담장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양현미(51) 씨 집. 현미 씨는 김도수 씨 '깨복쟁이'(소꿉친구)의 동생이다. 그녀 역시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시 진뫼마을로 돌아왔다. 부모님이 손수 지은 집을 그대로 두고 그 앞에 새로 집을 지어 주말마다 오가고 있다. 현미 씨 집 뒤꼍을 따라 올라가면 밭이 둘 있는데 그녀는 그 밭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몇 달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밭을 놀리지 말라"는 말마따나 들여다보니 온통 자갈투성이. 거기에 기계 하나 쓰지 않고 홀로 맨손으로 일구시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팥 말고도 어린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 양현미 씨에게 고향은 돌밭을 일구던 어머니의 굽은 등이다.
진뫼마을에 눈이 내렸다. 장독대 위 쌓인 눈은 제 키만큼 우뚝 솟아 있고 동네 어르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 치우기에 여념이 없다. 밭에 뽑지 않고 남겨둔 배추 위에도 눈이 소담히 쌓였다. 부모님의 마음을 장독대에 묻어놨다는 김도수 씨는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이면 어린 시절 먹었던 김치 맛이 입안에 맴돈다.
KBS1 TV 설 특집 '나의 살던 고향은'은 16일 오후 7시 35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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