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하빈의 시와 함께] 강물

# 강물

정유정(1950~ )

아침입니다 아이를 깨우러 간 방, 부드럽고 환한 공기가 따뜻합니다…(중략)…검은 눈동자가 게슴츠레 감기어 있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깨우지 못합니다 어느 어리석은 엄마가 이 아이의 달디단 잠을 깨울 수 있을까요? 포얀 안갯속 풀숲 같은, 여린 잎 피어나는 동산 같은 곳, 꽃송이 이파리 따라 하늘하늘 춤추는 실바람같이 빨래 자락에 숨은 요정같이 아이 이불 속으로 들어가 폭 잠이 듭니다

강물이 아침 종소리와 함께 잠을 깨우지 않았다면

엄마는 아이의 꿈속에서 헤어나오지 않았을 텐데요

강물이 저 멀리 흘러가는 소리 듣지 못했다면

아직도 나는 아이 엄마의 엄마

내 엄마 품에서 잠자고 있을 테지요

―『대구의 시』 (대구시인협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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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얀 안갯속 풀숲 같은 아이의 이불 속으로, 빨래 자락에 숨은 요정같이 파고드는 엄마의 모습이라니! 엄마와 아이가 함께 깃든 따스한 이불 속처럼 사랑과 평화가 온전히 자리한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세상모르고 잠든 아이의 꿈속을 헤집고 다녔으니 엄마는 얼마나 행복할까? 아이의 꿈속으로 강물이 흐르고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어찌 알았을까? 그것은 아이 엄마가 되어 보지 않았다면, 그 엄마가 동심 어린 눈을 가진 시인이 아니었다면 필시 모를 일! 이도 저도 아니었다면 내게 강 같은 평화가, 내게 바다 같은 사랑이 언제 찾아왔는지 어디로 넘쳐흐르는지 까마득히 모르고 지나갈 일!

오늘은 음력 섣달 그믐, 까치설날이다. 오늘 밤엔 온 가족이 한 이불 속에 발을 밀어 넣고 오순도순 옛이야기라도 꽃피우자. 눈썹이 하얗게 세지 않게 뜬눈으로 지새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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