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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과거를 딛고 미래를 봐야

정창룡 논설실장
정창룡 논설실장

영국의 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과거와 미래의 끊임없는 대화"란 말로 유명해졌다.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남긴 말이다. 그에 따르면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그 이전엔 역사란 그저 사실의 기록일 뿐이었다. 그로 인해 과거사에서 교훈을 얻어 미래 행동을 위한 타당하고 유용한 일반적 지침을 마련하는 근거로 삼는 것이 가능해졌다. 역사는 마음에 안 든다고 덮어놓고 부정할 수 없다. 분석하고 계승해야 보다 나은 미래를 열 수 있다.

카의 말을 떠올린 것은 문재인 정부 아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과거가 빠르게 희석되고 있어서다. 한국은 20세기 후반 가장 빠르게 근대화를 이뤄 세계 개발도상국의 모범이 된 나라다. 해방 후 국민 1인당 국민총생산(GNP) 16달러의 세계 최빈국에서 3만달러를 넘긴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선 유일한 나라다. 개도국 중에서 한국을 본받고 싶어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해방 후 분단되며 가난 경쟁을 하던 북한과도 철저히 대비된다. 북한은 여전히 세계 최빈국에 속해 있다. '독재국가'이자 '빈곤국가'고, 인권 사각지대인 '불량국가'로 국제사회에 낙인 찍혀 있다. 남북의 차이는 지도자가 국민들에게 '과거를 딛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것을 요구하고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일 의지가 있었느냐의 여부에 따라 갈렸다.

이런 한국을 두고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독일은 2등을 위해 뛰지 않는다"고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과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독일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까지 전쟁의 참화를 딛고 성장한 한국이 보여준 경제적 성과에 대해 찬사를 보낸 바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기성세대가 꾸었던 꿈을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무작정 함께 나누자고 할 수 없다. 경제 기적을 이룬 시대가 꾸었던 꿈은 오늘날 젊은 세대가 꾸어야 할 꿈과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 삶의 바탕이 된 기적의 과정을 안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를 지우려는 움직임이 현 정부 들어 노골화하고 있다. 문 정부가 추진 중인 새 역사교과서에서 새마을운동, 중동건설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요소들이 사라질 전망이다. 아직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진 시안이라고는 하나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든 기록들이 빠지는 모양이다. 한국 발전의 토양이 됐던 '자유민주주의'도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로 대체될 태세다. 이리하여 등장할 '민주주의'는 북한이 주장하는 소위 '사회 민주주의'나 '인민 민주주의'와 별반 차이가 없다.

과거는 묻을 수 없다. 하지만 문 정부는 묻으려 든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과거를 청산 대상으로 여기는 듯하다. 과거를 부정하다 보니 경제도 뜬금없이 소득 주도 성장론을 내놨다. 실질임금이 증가하면 소비와 투자가 증가하고, 노동생산성이 증가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이상적으로는 가능하나 현실적으로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주장이다.

그 시험대인 최저임금은 도리어 걱정거리다. 근로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되레 근로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우리나라 발전의 원동력이 된 안정적 에너지 공급원이던 원자력발전은 졸지에 적폐가 됐다. 대통령의 '탈원전' 한마디에 진퇴의 기로에 섰다. 가동 가능한 원전의 38%를 멈춰 세운 한국수력원자력은 올해부터 당장 적자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후유증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 몫이다. 불량국가 북한에 대한 구애에 불안감을 느낀 미국은 '코리아 패싱'을 노골화하고 있다. 남북 차이를 불러온 우리 과거는 악착같이 지우려 들면서 북한 정권의 과거와 3대 세습,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리도 않는다. 남북대화를 위해서라면 비핵화 주장도, 한미군사훈련도 접을 태세다. 이 모든 것이 미래를 생각지 않아서다. 과거를 딛고 현재를 희생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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