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저성장 시대와 소확행(小確幸)

직장인 친구는 한 달에 두어 번 예전에 살던 동네로 '밤 마실'을 간다. 버스를 갈아타고, 걷고 하며 30분쯤 걸려 도착하는 곳은 작은 대폿집이다. 1만원 남짓한 돈을 내고는 혼자서 석쇠구이 한 접시와 소주를 마신다. 그리고는 소주 한 병에 기분 좋게 취해 돌아온다.

또 다른 직장인 친구는 틈만 나면 해외여행을 간다. 마카오, 홍콩, 오사카 등이 가까운 목적지다. 초저가 항공권이 뜨면 행선지를 가리지 않고 미리 사둔다. 그래서 가족동반보다는 홀로 갈 때가 더 많다. SNS에 자랑해놓은 친구의 여행지 셀카를 보면 부럽다. 하지만 나로선 쉽지 않은 일탈이다.

인생 뭐 있어? 싶지만 때로는 인생 참 힘들다. 그래서일까. 올 들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小確幸)이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소확행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에 낸 수필집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을 때, 새로 산 하얀 셔츠를 입을 때처럼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소확행의 예로 들었다. 버블 붕괴 이후 태어나서 한 번도 호황을 경험하지 못한 일본 청년세대의 경험이 소확행을 낳았다고 한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작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행복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손 닿는 곳에서 필사적으로 행복을 찾는 것이리라. 소확행이 '위로형 소비'를 도구로 하지만 40대 소확행과 20대 소확행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돈은 있는데 소박한 40대와 달리 경제적으로 어려운 20대 청년들에게는 혼술, 혼행(혼자 여행)도 사치다.

한국 청년들은 고달프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청년층 경제활동 제약의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보자. 지난해 15~29세 청년 체감실업률은 22.7%로 청년층 공식 실업률(9.9%), 전체 연령층 체감실업률(11.1%)을 훌쩍 넘었다. 일자리가 있더라도 불안정한 경우가 많았다. 15~29세 신규 채용 청년 중 비정규직은 2007년 54.1%에서 2015년 64.0%로 상승했다. 일자리가 변변치 않다 보니 빚은 늘고 소득은 줄고 있다. 전체 가구 평균 부채가 2012~2016년 28.8% 늘어날 때 30세 미만 가구주 부채는 85.9%나 늘어났다.

30세 미만 가구 가처분소득은 2015년 2천823만원에서 2016년 2천814만원으로 되레 줄었다. 고용, 소득 부진을 겪는 청년들은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 됐다.

지역 사정은 더 참담하다. 동북지방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의 경제지표 상당 부분이 전국 평균에 미달했다. 지난해 대구 실업자 수는 5만1천 명으로 전년보다 10.5% 증가했다. 지난해 대구에서 유출된 인구는 1만2천 명에 육박했다. 고용 여건 악화가 주요한 이유다.

한국은 이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2020년대 2% 초반, 2030년대 1%대로 전망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범정부 청년실업 대책을 21차례나 내놓고, 최근 5년간 청년 일자리에 1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청년 고용 상황은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저성장, 고령화에 더해 청년 고용 불안은 더 심화할 게 분명해 보인다.

해법은 없을까. 관 주도의 단기적인 일자리 공급은 실효성이 없다는 게 이미 판명났다. 벤처 창업을 통한 일자리 확충 역시 한계가 있다. 그나마 효과적인 대안은 일자리 미스매칭 해소인데, 구직 청년에게 덮어놓고 눈높이를 낮춰라고 할 문제는 아니다. 기업 주도 인재를 키운다는 마음으로 고용 환경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한다. 작고 소소한 행복도 좋지만, 넓은 세상에 도전하고 성취하는 행복을 느끼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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