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 산책] 모두 기뻐하건마는

사람 대접 받기 힘들었던…수많은 홍길동

이종문
이종문

모두 기뻐하건마는 이휘(李彙)

아들을 낳으면 모두 기뻐하건마는 生子人皆喜(생자인개희)

유독 내 마음은 그렇지가 못하다네 吾心獨不然(오심독불연)

이 세상 한량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世間無限苦(세간무한고)

아들께 또다시 전해주는 것이어니 於汝又將傳(어여우장전)

조선시대의 진사(進士) 이휘(李彙)가 아들을 낳고 지었다는 시다. 아들을 낳으면 기뻐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유독 그의 마음이 기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먼저 말을 한다면 그가 서자였기 때문이다. 조선조에서는 조상이 한번 서자가 되면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가며 서자 계열로 분류되어 말 못 할 차별과 수모를 겪었다. 그런 세상에서 자신이 겪어온 밑도 끝도 없는 괴로움들을 아들에게 대물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버지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무겁고도 괴롭다. 자라서 상황을 다 알게 된 아들이 '왜 나를 낳았느냐'고 따지고 들면 도무지 할 말이 있을 리가 없다.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여 상하(上下) 노복(奴僕)이 다 천(賤)히 보고, 친척과 고구(故舊'오랜 친구)도 손가락질하며 아무의 천생(賤生)이라 이르오니,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에 있사오리까?" 적서(嫡庶) 차별의 가당치도 않은 현실을 신랄하게 고발한 소설 '홍길동전'의 한 대목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홍길동은 정이품 판서인 아버지와 아버지를 모시던 여종 사이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홍길동은 명문대가의 아들임이 분명하지만, 막상 그의 사회적 위상은 양반은커녕 서민보다도 훨씬 못한 것이었다.

첩을 두는 것을 인정했던 조선시대에는 홍길동과 같은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그들은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지녀도 사회적 진출에 한계가 있었고,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의 제사 때도 당당하게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대문 근처에서 얼씬거리거나, 대문 근처에서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한마디로 말하여 동서고금에 그 유례를 찾을 수가 없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제도를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을 신분적 질곡 앞에 망연자실케 했던 것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없는 것은 아니나 갑오경장을 계기로 하여 적서 간의 제도적 차별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자식의 출생을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있는 시대가 왔는지는 의문스럽다. 상하 계층 간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가 적서의 차이에 못지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재벌 2세가 되기도 하고, 찢어지게 어려운 가난뱅이 아들이 되기도 하는 그 출발부터가 적서의 차별과 닮은꼴이다. 게다가 계층 이동의 사닥다리마저도 별로 없어서 개천에서 용이 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한번 하층은 영원한 하층으로 고착화되기 쉬운 상황에서, 가난뱅이 아버지가 마음 놓고 아들을 낳기는 정말 어렵다. 자신이 겪어온 하층민의 서러움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들이 커서 '왜 나를 낳았느냐'고 따지고 들면 도무지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아아 말도 안 되는, 울컥 도분이 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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