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컬링 신드롬

컬링 여자 대표팀의 선전으로 급기야 '도장 깨기'라는 용어까지 등장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국 대표팀이 컬링 예선 경기에서 8승 1패로 1위에 오른 것은 빅 뉴스다. 게다가 랭킹 8위인 한국이 세계 1위 캐나다를 시작으로 스위스, 영국, 스웨덴 등 강자를 하나씩 무릎 꿇리면서 '의성의 기적'을 연출한 것은 예상 밖의 일이다.

경북체육회 소속 대표 선수들이 보여준 발군의 실력과 집중력은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무술 도장을 찾아다니며 고수들을 차례로 꺾고 자기 존재감을 떨치는 스토리와 빼닮았다. 자연히 안방 시청자들의 관심도 온통 컬링이다. "영미, 영미~"가 지난 며칠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꿰찼고, SNS에는 로봇청소기와 빗자루로 대체한 '클링'(클리닝) 패러디가 넘쳐난다.

비인기 종목도 모자라 비인지(非認知) 종목이던 컬링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힘은 뭘까. 외신 보도대로 한국 여자 컬링이 이번 올림픽에서 신데렐라가 된 것은 특유의 승부욕과 집중력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칠판에 '컬링 할 사람'이라고 쓴, 마치 동화 같은 인연에서 출발해 올림픽 무대를 호령하는 것을 보면 우리와 궁합이 잘 맞는다. 요모조모 궁리하면서 손가락의 미묘한 강약 조절과 회전력을 통해 복잡한 얼음판 상황을 정리해나가는 두뇌 게임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컬링(Curling)의 묘미는 '휘다'라는 뜻의 영어 'curl' 어원에서 보듯 거의 20㎏ 무게의 화강석 돌이 얼음 위를 미끄러지고 휘면서 다양한 상황을 연출해낸다. 그래도 남녀노소 누구든 조금만 집중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경기다. 어쩌면 컬링은 우리의 겨울철 생활스포츠 시대를 앞당기는 기폭제가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멍석이다. 2006년 의성에 들어선 컬링경기장이 평창에서 꽃을 피웠듯 전국에 고작 5곳뿐인 컬링장으로는 어렵다. 캐나다는 컬링 인구가 200만 명이 넘고 컬링장도 1천500곳에 이른다.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흐름을 바꿔놓으려면 이런 인프라에 대한 관심은 기본이다. 특정 종목과 메달에 쏠리는 분위기도 달라져야 한다. 결과에만 치중해 경기 자체를 즐기지 못한다면 생활스포츠는 어렵다. 컬링이 우리의 격정을 '쿨'한 감성으로 치환해내는 촉매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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