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 유감

베이비붐 세대 이전의 작가들의 소설에서 굶주림이란 소재는 자주 나타난다. 이 소설들에서 먹는다는 것은 생존의 문제였기에 음식의 질을 따지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달성공원 주변이 소설의 주무대였던 이동하의 '장난감도시'나 약전골목 일대가 주무대였던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에서도 주인공들은 늘 일상적으로 배고픔을 겪는다. 소설 속의 주인공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1950년대까지 먹는다는 것은 생존 차원의 문제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던 것 같다. 내가 반찬 투정을 하니까, 세 들어 사는 아저씨가 내게 해 준 말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만주에 갔을 땐데, 3일을 내리 굶었어. 나중엔 눈에 보이는 게 없는데, 얼마나 서러운지 눈에서 달구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기라. 그때 결심했어. 앞으로 어떤 음식도 달게 먹겠다고." 나의 반찬 투정을 달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 말의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그 말을 들은 이후에는 음식이 좀 맛이 없어도 그 아저씨의 말을 생각하며 '한 끼야 못 먹으랴' 하는 심정으로 배를 채웠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 3만달러에 접어들면서 온 국민이 반찬 투정을 하는 시대로 변해버렸다. 소득이 높아지니 당연히 음식의 질을 따지게 되었다.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먹자는 것이다. 그러니 외식산업이 발달하고 '먹방'이 유행하고 식도락이 보편화되었다. 음식의 맛을 평가하는 수준도 대단히 높아졌다. 짜장면 한 그릇이면 환호작약했던 시절에서 미슐랭 가이드 별이 달린 음식점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시대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제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한 끼의 식사는 '대충 끼니를 때우는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먹는 것이 인간의 행복지수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이기도 하다.

온 국민의 입맛이 날로 예리해지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구태의연하게 한결같은 고집으로 여전히 맛없음을 고수하는 집단이 있다.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점들이다. 메뉴가 다양해지고 맛있는 음식을 선보이는 휴게소도 일부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휴게소 음식들은 그냥 '휴게소 음식'이다.

물론 휴게소 음식점 업주들만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이라고 왜 맛있는 음식을 내놓고 싶지 않겠는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휴게소 음식점 매출액의 약 50%는 임차의 대가로 내는 돈이라 한다. 나머지 50%로 인건비와 식재료비를 감당하고 여기에서 마진을 남겨야 한다면 음식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휴게소 음식 맛의 형편없음은 업주의 잘못이 아니라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의 비합리성에서 오는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또한 이 문제의 이면에는 한국도로공사의 휴게소 운영업체 선정 입찰방식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발상을 달리해보자. 대구 인근 고속도로 휴게소에 대구가 자랑하는 음식이 나온다면? 이를테면 따로국밥이나 납작 만두, 매운 갈비찜 같은 음식이 대구 시내와 동일한 수준으로 차려진다면? 안동이나 상주, 밀양과 같은 도시들도 자신을 드러내는 그 지방 특색이 담긴 음식을 차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행객들은 일부러라도 그 휴게소에 쉬면서 식도락을 즐길 것이다. 우리나라만큼 고속도로 기반이 잘 갖추어져 있으면서 각 지역마다 지방의 고유성을 대표하는 특색 있고 맛있는 음식이 발달한 나라도 드물다. 생각만 좀 바꾸면 온 국민이 고속도로로 여행할 때마다 입은 즐거워질 텐데, 입이 즐거워지면 인생도 가끔은 즐겁기 마련인데….

한 끼를 때우는 음식이 아니라 한 끼를 즐길 수 있는 휴게소 음식으로 진화하기를 기대해 본다.

하응백 문학평론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