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다양성 존중돼야 열린사회

"북한은 이전에도 핵무기를 없앤다고 했다. 그 약속을 제대로 지켰나? 고모부를 고사포로 쏴 죽이고, 친형을 독살한 독재자를 어떻게 믿나."

"아버지, 남북 정상이 만나 한반도에서 핵과 전쟁을 없애자고 합의한 것은 감격스러운 일 아닙니까?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을 만나서 대화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너무 냉소적으로 보지 마시죠."

서울에 사는 친구가 아버지와 나눈 대화다. 친구는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이 계신 대구에 왔다. TV 뉴스를 보다가 아버지와 설전을 벌이게 됐다. 할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단다. 친구는 2016년 촛불집회에 참여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태극기집회에서 탄핵 반대를 외치셨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터라 친구에게 어쭙잖은 조언을 했다. "전쟁을 겪고 반공을 신념으로 여겨온 아버지 세대의 경험과 생각이 우리와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자식들도 우리와는 생각이 다르지 않겠냐." 친구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나라처럼 사회적 갈등이 심각할까"라며 한숨을 쉬었다.

친구의 의문에 대한 답이 될 만한 자료가 있다. 영국 BBC방송국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설문조사('글로벌서베이: 분열된 세상') 결과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사회의 관용도를 가늠하는 항목에서 27개국 중 26위를 기록했다. "당신은 사회적 배경, 문화, 사고방식 등이 다른 사람을 얼마나 관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한국인의 20%만이 '매우 관용적'이라고 답했다. 27개국 평균(46%)의 절반 수준이다. 꼴찌는 헝가리. 이 나라는 유럽 난민사태 등의 여파로 우경화 성향이 짙다. 반면 난민 포용에 가장 적극적인 캐나다는 74%로 세계 최고 수준의 관용성을 보였다.

또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가장 큰 갈등 요인은 '정치적 견해차 갈등' (61%)으로 조사됐다.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에 대한 불신은 27개국 중 가장 높았다. 한국인의 35%가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집단으로 '정치적 관점이 다른 집단'을 지목했다.

현실이 이런데도 정치인들은 갈등 조정에 손 놓고 있다. 오히려 갈등을 조장한다. 여야 대변인들의 논평은 막말 전쟁이다. 상식과 품위는 찾을 수 없다. 진영 논리로 이념 갈등을 부추긴다. '빨갱이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에도 편 가르기가 심각하다. 끼리끼리만 소통한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공격하고 배제한다. 온라인에서는 상호작용 방식이 더 급진적이고 반복적이어서 파괴력이 크다.

우리는 다른 생각·다른 가치(다양성)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지 않다. 한국 사회는 해방 이후부터 정치권력의 필요에 따라 다양성이 억압돼 왔다. 일제강점, 전쟁과 분단, 군사문화, 독재 등이 원인이 됐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시인 김수영은 "민주주의 사회는 말대답을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가 있는 사회"라고 역설했다.

다양성의 가치는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생물학적 다양성이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획일적인 이데올로기로 강제됐던 '닫힌사회'에서 '열린사회'로 진보하려면 다양성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한반도에서 역사적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질적이고 낯선 것들과의 상생을 어떻게 이룰지 고민해야 할 때다.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 비판적 의식과 성찰이 필요하다. 타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사유를 '단순한 생각함이 아니라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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