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합리적 무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행됐던 도편(陶片)추방제의 목적은 민주주의 보호였다. 추방을 통해 데마고그(선동가)나 정변 음모자, 참주의 출현을 방지하려고 한 것이다. 이 제도는 본래의 목적에 맞게 잘 작동했을까?


처음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정적 제거의 합법적 수단으로 변질됐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묻지마 투표'였다.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를 격파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모범적이고 금욕적인 행실로 '정의로운 자'로 불렸던 아리스티데스의 추방에 얽힌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투표 당일 아리스티데스를 모르고, 글도 모르는 한 농부가 그에게 도편에 아리스티데스의 이름을 적어달라고 했다. 아리스티데스는 농부에게 그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고 물었다. 농부의 대답은 이랬다. "아니요. 나는 그가 누군지 모르지만 어디를 가든 그를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듣기 지겨워졌소." 이 말을 듣고 아리스티테스는 조용히 자기 이름을 써줬다. 그리고 추방됐다.


현대의 유권자들은 '아리스티데스의 농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교육 수준이 높아졌고 후보자에 관한 정보가 넘쳐나지만 별로 달라지진 않은 것 같다. 후보자에 대한 정보가 많지만 얼마나 정확한지 알기 어렵고, 후보자를 알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자신의 한 표가 투표결과에 영향을 미칠 확률은 극히 낮으니 아예 알려고 하지 않는 게 이득이라는, 이른바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때문이다.


기자는 지난주 노모가 계시는 고향집에 들렀다가 배달된 지방선거 공보를 보면서 이를 재확인했다. 그 많은 후보자별 공보는 건성건성 보는 것만도 고역이었다. 후보자들의 약속이 어떻게 가능한지도 알 길이 없었다. 인내심을 발휘해 보긴 다 봤지만, 개가 이 잡는 수준이었고 결국 누가 누군지 알 수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아졌다.


문제는 이런 합리적 무지가 정상배를 키운다는 사실이다. 합리적 무지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공간을 만들고, 이는 민주주의의 퇴보를 낳는다. 개인에게는 합리적이지만 사회 전체로는 비합리적인, 합리적 무지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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