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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구시의원입니다] 5) 이진련(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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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이 고향인데 고교 때부터 학생운동에 관심 가져
물리치료사를 하면서도 故 노무현 전 대통령 홍보대사 역할 톡톡
여성 개개인이 생활 정치인이 되도록 산파 역할 할 것

대구시의원. 아는 사람만 압니다. 우리 동네 국회의원은 알아도 또 다른 우리 동네 대변자인 시의원은 잘 모릅니다. 이제 그들에게도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런 관심이 우리 구(區), 나아가 우리 대구를 잘 돌아가게 하는 방법입니다. 매일신문은 이번 6'13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시의원들의 인터뷰를 싣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동네 시의원의 참모습을 확인해보세요.

5) 이진련(43·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나는 대구시의원입니다] 이진련 대구시의원

"저에게 보통 사람들과 다른 DNA가 있는 모양이에요."
이진련(43·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대구시의원을 보자마자 '걸크러시(멋진 여성) 포스'가 나왔다. 어릴 때부터 우리 사회에 눈을 떴고 학생운동을 오래한 까닭일까. 그녀에게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시원스런 답변. 그녀에게는 젊은 여성 정치인의 DNA가 풍겼다.

-고교 때부터 학생운동에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경북 의성이 고향인데 의성여고 다닐 때부터 학생운동에 관심을 뒀다. 고교 때 전교조 선생님들'고교 선후배들과 함께 철학 모임을 하면서 사회문제에 눈을 떴다. 당시 시골에서 잘 접하기 어려웠던 '말'과 시사성 잡지도 많이 봤다. 사회운동에 관심 많은 의성 학생들과 모여 '제3교실'이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자연스레 도시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학생들과 교류하게 됐다.

1993년쯤인가. 학생운동의 마지막 세대가 활동하던 시기인데 서강대 학생 1명을 만난 기억이 난다. 당시 그 학생은 목소리가 안 돌아온다고 하더라. 이유인즉슨, 강경대 열사가 학생운동을 하다 사망했는데 너무 많이 울어서 그렇다고 하더라. 그때 나를 비롯한 많은 학생이 큰 충격을 받았고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웃으며) 여담으로 그때 연을 맺었던 선배들을 한 번씩 보면 "아직도 그렇게 사냐?"며 혀를 내두른다. 그 선배들은 전부 먹고살기가 바쁘니까 사회 운동 등에 관심을 거의 두지 못한다.

-학생운동 문제로 부모와 갈등을 겪지는 않았나?
▶부모님이 보수적이면서 제가 하는 일은 크게 말리지 않았다. 고교 때부터 제가 동네에서는 똑똑한 아이로 인정받아서 부모님의 기대도 컸다. 이 때문에 제가 학생운동을 하는 것을 반대할 법도 하지만 내가 하는 일에 한 번도 잔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예를 들어 내가 방학인데도 학생운동 업무로 계속 학교에 있어 학교에서 부모님에게 연락해서 좀 데리러 가라고 했는데도 부모님은 "딸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며 나를 끝까지 믿어줬다. 아버지는 저의 영원한 팬이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2명의 동생도 내가 학생운동을 하는 것은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만, 지금은 걱정을 해주며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이진련 대구시의원.
이진련 대구시의원.

-대학 전공이 물리치료학과던데 하는 일을 생각하면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대학을 갈 생각이 없었다. 고교 졸업 후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전문대라도 가라고 워낙 타일러 어쩔 수 없이 대구의 모 전문대 행정학과를 갔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학생운동을 계속 했다. 전문대를 졸업한 뒤 의성으로 학생운동 하려고 다시 가기도 했다. 1998년쯤 당시 의성에 농민회 간사를 한 사람이 없어서 간사로 간 것이다. 어머니는 직장을 다니라고 했지만 제가 행복하게 살고 싶다며 무릎 꿇고 빌어 가까스로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다 2000년쯤 어머니가 중풍으로 갑자기 쓰러지면서 학생운동 일을 잠시 접고 병원에서 8개월 정도 먹고 자면서 간병을 했다. 병실 청소도 도맡으면서 지극정성으로 간병했다. 다행히 심각했던 어머니 병세가 호전됐다. 병원에서도 이를 보고 기적이라고 이야기도 하더라. 간병을 하면서 재활을 배워야 하겠다 싶어서 안동과학대 물리치료학과를 들어갔다.

-경북 노사모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2002년쯤 '바보 노무현'이란 제목의 시를 우연히 보게 됐다. 내용이 가슴에 참 와 닿았다. 그렇게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찾아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노사모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는 노사모가 막 활성화되던 시기였다. 지금은 정치인 팬클럽이 많지만 아직 노사모만큼 격조 높은 팬클럽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노사모는 정치인 팬클럽의 롤모델이다. 그때는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을 앞두고 한창 유세하던 시기였다. 저도 경북 전역하러 다니면서 노 전 대통령의 지지를 호소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노 전 대통령이 구미 경선 유세를 위해 구미역에 왔을 때였다. 역에서 맞이하고 있는데 노 전 대통령이 보이기에 제가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랬더니 노 전 대통령이 "저, 저 말입니까? 아저씨 맞죠?"라고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고위 정치인은 권위적이고 거리감을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노 전 대통령이 인간적이고 소탈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눈빛 또한 무척 해맑았다.

-일반 병원 재활센터에서 물리치료사로 근무한 것으로 아는데?
▶10년 가까이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면서도 환자들에게 민주당 입당을 권유하고 노 전 대통령의 홍보대사 역할을 해왔다. 대구가 보수적이라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그렇게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계속 만나는 사람들을 설득했다. 동성아트홀 대외협력팀장을 한때 맡으면서 인수 과정에서 역할을 했다. 워낙 바빠 거의 나들이가는 것은 생각도 못 했다. 결혼도 생각이 없었는데 남자친구가 제가 결혼을 안 할 것 같으니까 날을 아예 잡아서 통보했다.

결혼하기 직전에 보통 받는 마사지나 웨딩숍을 가는 것도 못 했다. 바쁜 것도 있었지만, 형식적인 절차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던 것 같다. 특이한 제 스타일을 남편이 다 맞춰주니까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남편이 이해심이 많다.

-여성정치아카데미 대표도 맡고 있는데?
▶여민포럼 내 산하 조직으로 여성정치아카데미가 있다. 여민포럼은 전국적인 조직에서 2015년 대구에서 발족했다. 정권을 재창출하고 여성 정치인을 키워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초반에 정규 회원이 200명에서 출발, 현재 회비를 내는 정회원은 40명 정도 된다. 발족할 때 대구 대표를 하면서 지금은 중앙에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조직을 운영하면서 가장 뿌듯한 것은 여성들이 아이의 엄마가 아닌 개인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지역에도 여성 인재들이 적잖은데 누구 엄마로만 살고 있다. 어디를 가서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앞에 나설 기회가 없었다. 멤버들 또한 초반에는 자기 삶에 대한 이야기조차 잘 못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 나가서 자기 이야기를 서슴없이 한다. 한 멤버는 울기도 했다. 아이의 언어로만 이야기하다 자기 삶을 이야기하면서 감동하였다고 했다.

그렇다고 제가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의 극 페미니즘적인 성향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상식적이지 않고 극단적인 언어나 표현이 많아서다. 여성 성(性)을 이야기하면서 남성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동반자적인 개념을 가져야 한다.

-일반 여성들이 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여성들 개개인이 생활 정치인이 돼야 한다. 정치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문제나 급식 문제 등도 엄마의 눈으로,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것도 엄연한 정치다. 모든 사람이 정치 영역에 들어가 있다.

착한 소비도 정치의 일종이다. 그러려면 사회 현상이나 문제에 관심을 둬야 한다. 여민포럼이 그런 계기를 꾸준히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를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제도권에 끌어들여 관심을 두도록 하는 것이 제 역할이기도 하다.

-젊고 정치 색깔이 확실하니까 대구시에서 긴장을 많이 할 것 같은데?
▶대구시 공무원 중에 처음에는 되게 센 줄 알았는데 막상 겪어 보니까 예의도 바르고 보기 좋다고 이야기하더라(쑥스러운 듯 웃음). 시의회에서도 각 소속당이 있는데 이념이나 성향으로 부딪힐 때는 첨예하고 부딪혀야 한다.

그러나 합심해서 무언가를 만들 때는 적극적으로 도우려고 한다. 시의회 의장도 여성이라 사안에 대해 거리낌없이 상의를 하자고 하더라.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것만은 꼭 이루고 싶다는 게 있으면?
▶논란이 되는 대구취수원 이전만이 답은 아니다. 취수원 이전을 두고 시민 공청회 등을 거쳐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취수를 강물에서 하는 것이 맞는지, 낙동강을 살려내지 않고 이전만 해서 되는지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여겨진다.

또한 여성들의 가치철학을 높일 수 있도록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꾸준히 할 계획이다. 청소년 정치아카데미 등 형식의 사업도 꾸준히 해보고 싶다. 대구시의회와 대구시, 민주당 사이의 소통할 방법을 찾아서 가교 역할을 하겠다. 제가 교육위원회 소속이라 이번에 당선된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이 생각하는 교육관과 역사관 등과 관련해 대구시교육감과 꾸준히 조율하고 논의하겠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역사관 등도 논의 대상이다. 젊은 엄마들이나 교육청 산하 노동자들을 현장에서 많이 만나는데 그들에게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을 찾겠다. 결국 현장에 답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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