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조폭 의리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의리는 태산 같고 죽음은 홍모(鴻毛기러기의 털)와 같다.' 의리를 위해서는 죽음을 가볍게 여기겠다는 속담이다.

의리는 예로부터 거친 사나이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폭력 세계를 그린 영화들은 대개 친구의 의리와 배신을 주제로 다룬다. 대표적인 영화가 1980년대 후반 '주윤발 신드롬'을 일으킨 홍콩영화 '영웅본색' 시리즈다. 주인공 송자호(적룡 분)는 이렇게 외친다. "나를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내 친구는 안 돼…." 한국 조폭 영화 '친구'(2001년) '비열한 거리'(2006년) '신세계'(2012년)의 줄거리도 비슷하다.

할리우드 폭력 영화를 보면 '의리'라는 개념은 등장하지 않는다. 서양인은 친구 때문에 자기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는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의리'는 유교에서 비롯된 동양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폭력 영화의 교과서로 불리는 '대부' 시리즈는 마피아의 인간관계를 '비즈니스'로 해석했다. 주인공 알 파치노는 추기경에게 이렇게 털어놓는다. "우정과 돈은 물과 기름입니다."

실제로 조폭은 의리가 없다. 2013년 일명 '용팔이 사건'의 주역인 김용남 씨가 방송에서 한 말이다. "조폭을 지배하는 건 돈이다. 돈이 있는 선배에게 부하가 몰리고 돈이 없는 선배에겐 배신만 남는다."

조폭 의리는 범법자의 세계에서도 사라진 개념이지만, 버젓이 존재하는 곳이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특검 조사를 둘러싸고 여권 인사들의 '의리'는 남달랐다. '김 지사의 진실함을 믿는다.'(이해찬) '부당한 특검 공세와 여론 재판에서 반드시 지켜내겠다'(송영길) '특검의 행태는 교묘한 언론플레이와 망신주기'(추미애)….

김 지사의 유무죄를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 다만, 그가 몇 차례 말을 바꿨고 거짓말을 한 것은 사실이다. '드루킹' 같은 인물과 어울린 자체부터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만 해도 미국 같으면 정계 은퇴감이다. 유력 여권 인사들이 '조폭에게도 없는' 의리를 앞다퉈 내세우고 있으니 공익광고의 문구가 생각난다. '내가 할 땐 정과 의리이지만 남이 볼 땐 부정과 비리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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