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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 "주 52시간 근무는 현장 현실 외면한 정책"

주 52시간 근무제로 '저녁이 있는 삶'이 직장인들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공연문화계에는 이 제도가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법정 근무시간을 준수하자니 공연준비에 차질이 발생하고, 작품에 만전을 기하자니 법을 어겨야 한다는 것이다.

축제가 한참 진행 중인 대구오페라하우스 32명의 직원들은 이번 축제를 위해 휴무를 당겨 썼다. 축제기간에 초과할 근무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다. 근로자를 위한 정책이 일부 직군에서는 근로자를 불편하게 하는 정책이 되고 있다.

현재 대구에는 수성아트피아, 대구오페라하우스, 대구콘서트하우스 등 공연장들이 있다. 이들 공연장에는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공연장 업무 방식은 일반 업종과는 달라 주 52시간 근무를 획일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목소리가 높다.

◆성수기에 주 52시간 근로는 휴지조각

공연장에서는 리허설, 메인 공연, 공연 후 장비 분류에 따른 장시간 근무가 일반적이다. 공연을 2, 3일 앞두고는 하루 15시간을 넘기기 예사라 금방 법정시간을 넘겨버린다는 것. 특히 공연팀과 호흡을 맞추는 무대세트 제작, 조명, 음향팀이 가장 심각하다. 그래서 지역 공연예술계에서는 탄력근무제를 통해 전체 근무시간을 맞추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공연이 있는 날은 밤늦게까지 일하고, 공연이 없는 날은 근무시간을 줄여 '총량'을 맞추는 방식이다.

문제는 공연이 특정 시즌에 몰리는 계절성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수성아트피아의 김형국 관장은 "공연이 몰리는 10~12월 성수기엔 아무리 탄력근무제를 적용해도 주 52시간을 초과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공연이 집중될 땐 주당 100시간 가까이 근무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3개월 단위 탄력근무제도로는 답이 없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 목적에도 도움안돼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이유는 크게 워라밸 장려와 일자리 창출이 목적이었다. 근무 시간을 줄인 만큼 일자리를 늘려 고용을 증대하자는 취지다.

공연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공연 문화계에서는 실효를 거두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공연장의 경우 대부분 직군이 무대 세트, 조명, 음향같은 전문 직군이어서 일자리를 나누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 또 이들 대부분이 오랫동안 팀워크를 다져왔기 때문에 신규 인력을 투입하기도, 인력을 재배치하기도 어렵다.

인력 충원에 따른 제작비 증가도 고용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공연문화계 관계자는 "정부 권고대로 일자리 창출을 위해 특수 직군들을 더 고용하면 제작비가 크게 늘게 된다"며 "이런 경우 감독자는 이 비용을 감수하며 공연 제작을 계속 할 것인지 공연을 포기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고 말한다.

◆공연문화계가 제시하는 해법

해법은 없는 걸까? 수성아트피아 김형국 관장은 현행 '3개월'로 되어 있는 탄력근무기준기간을 '6개월'로 늘리면 상당 부분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한다. 현행 3개월 기준으로는 성수기때 주 52시간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고, 오히려 공연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준 기간을 6개월로 현실화하자는 게 김 관장의 주장이다. 이럴 경우 6개월 안에 성수기 비수기가 맞물리면서 효율적인 탄력 근무제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예 문화공연 직군들은 별도 규정을 두어 외국처럼 '노사합의에 의한 근무시간제'를 적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오페라하우스의 한 직원은 "전체 근무시간의 총량은 제한을 두되(근로자들의 삶의 질은 보장하고) 근무 시간을 노사 합의를 통해 탄력적으로 운영하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최근 "공연 관계자들의 현행 근무형태에 대해 문제점을 인식하고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수성아트피아를 찾은 관객들이 공연 시작을 앞두고 공연장 로비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공연장에도 일괄적으로 적용할 경우 공연문화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매일신문 DB
수성아트피아를 찾은 관객들이 공연 시작을 앞두고 공연장 로비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공연장에도 일괄적으로 적용할 경우 공연문화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매일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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