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굶주림의 역사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고구려 봉상왕 9년 2월부터 7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었다고 하며, 백제 동성왕 21년 여름에 크게 가물어 백성들이 굶주려 서로 잡아먹었고 도둑이 많이 일어났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백제본기>

'평안도의 굶주린 백성 이어둔이 인육(人肉)을 먹었다. 임금은 매우 굶주려서 실성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여 사형을 감면하였다.'<조선왕조실록, 숙종 22년(1696년)>

'북한 당국은 최근 인육을 먹은 혐의로 최소한 3명을 처형했다. 2009년 중국 접경지역인 양강도 혜산에서 한 남자가 인육을 먹은 혐의로 처형됐는데, 화폐 개혁으로 인한 물가 폭등으로 심각한 식량 문제가 발생하면서 빚어진 결과로 보인다. 북한 내 식인 문제는 전반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르 피가로, 2012년 5월 18일 자>

굶주림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 얼마나 피폐했으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상황이 될까. '배고프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다'는 속설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이 굶주림에서 벗어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60년대만 해도 초근목피로 연명하다 부황증(浮黃症)에 걸린 농민이 꽤 많았다. 경제 개발이 시작된 1960년대 후반에서야 '춘궁기'(春窮期)가 완전히 없어졌으니 배고픔 해결은 민족의 숙원이나 다름없었다. 일제의 수탈로 시작된 '보릿고개'는 눈물과 고통의 역사였다.

16일은 UN 식량농업기구(FAO)가 제정한 '세계 식량의 날'이다. 식량농업기구는 올해 식량 부족 국가로 39개국을 지정했는데, 북한이 아프리카 국가들과 함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평균 160만t의 쌀을 생산했지만, 지난해 가을 140만t을 생산해 10% 이상 부족한 상태라고 했다. 쌀이 모자라긴 하지만, 아사자 350만 명이 발생한 1990년대처럼 아비규환의 상황은 아니다. 남쪽은 식량이 남아돌고 북한은 항상 굶주린다. 요즘 남북이 대화를 진행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지만, 배고픈 인민들의 처참한 얘기는 어디에도 없다. 북한 사람들의 배고픔만은 없애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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