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성장기 우리나라에서 문화산업이란 극히 제한적인 계층을 상대로 이뤄졌다. 이른바 '월화수목금금금'이 사회인의 미덕이자 애국으로 여겨진 집단주의적 사회에서 개인의 문화 향유는 일종의 사치로 인식됐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점차 각자의 욕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문화산업은 단숨에 생활 속 깊숙히 들어왔다. 문화예술을 향유하려는 욕구는 소득이나 계층에 관계없이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오페라 등 어쩐지 멀고 어려워 보였던 갖가지 공연문화들도 우리 일상 속 가까운 곳까지 침투하기 시작했다.

◆ 산업으로서의 공연문화… '주 52시간' 탄력
어떤 문화콘텐츠가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자본이나 정치권력을 틀어쥔 특정한 계층을 넘어 보편적 대중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공연문화는 다른 문화콘텐츠와 비교해 그 진입장벽이 높다.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4~5시간에 달하는 긴 시간을 비워야 하고, 그 시간동안 다른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접근을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산업으로서의 공연문화는 시민 개개인의 여가시간 확대와 관련이 깊다. 예컨대 매일 오후 11시까지 야근을 거듭하는데다 주말에도 출근해 일하는 사람이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즐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은 이런 측면에서 공연문화 산업에 상당한 발전동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밤늦게 퇴근하면 잠들기 바빴던 과거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평일 여가 문화'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칼퇴근' 후 연극이나 뮤지컬 등 공연문화를 즐기러 가는 직장인을 찾기가 어렵지 않은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지난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여가활동 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국민의 56.7%가 단순한 휴식으로 여가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화예술 관람과 참여 활동은 합쳐서도 1.6%에 불과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예술은 '어쩐지 어려운 취미'로 여겨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시민들이 오페라하우스나 대극장에 가지 않아도 일상생활 속에서 공연문화를 접할 수 있게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유동인구가 많은 동성로나 수성못 등지에서 열리는 야간상설공연과 뮤지컬 거리공연이 대표적인 예다.
대구시 관계자는 "시민들이 일상 속 공연문화에 보다 친숙해질 수 있도록 올해만 100차례가 넘는 야간상설공연과 뮤지컬 거리공연을 개최했고, 호응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고 강조했다.
◆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가 지방분권 초석"
문화콘텐츠 산업의 수도권 쏠림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최경환 의원(민주평화당)이 지난달 7일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제출받은 '한국콘텐츠산업의 수도권 지역간 편차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6년 기준 콘텐츠산업 매출액 91조7천억원 중 87%가 수도권 소재 기업에서 발생했다.
이같은 '문화 쏠림현상'은 각 지역에서 2~30대 청년층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현상과도 관련지을 수 있다.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의 한 대학에 진학한 뒤 역시 수도권에서 취업해 살고 있는 청년 강모(28) 씨는 "일자리가 수도권에 많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갖가지 문화들이 서울에 집중돼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면서 "예를 들어 좋아하는 해외 밴드가 내한공연을 할 경우 거의 100% 서울에서만 열린다. 아직 젊을 때 다양한 문화를 누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는 지역 간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균형발전을 이뤄내는 일이 곧 지방분권시대의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수도권 최대규모의 공연 여건과 수요를 가진 대구는 특히 뮤지컬 시장에서 탈(脫) 수도권이 활발한 지역이다. 지역 공연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유명 뮤지컬 공연이 내한할 경우 대구는 필수적으로 거치고, 간혹 대구에서 먼저 열린 뒤 서울로 향하는 작품들도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수도권을 모방하고 따라잡기보다는 소규모이지만 다채로운 시장과 특화된 기간시설, 대구만의 역량을 갖춘 작품을 내세워 수도권과의 경쟁에 나설 방침이다.
한만수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지난 2003년 대구문화산업발전 장기계획을 수립하는 등 지자체 차원의 지속적 노력이 단단한 토대를 형성하는 시점으로 본다"면서 "중장기적 안목에서 문화콘텐츠가 시민의 삶 속에 물처럼 흐르는 도시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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