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얼굴을 찌푸린 김미경(가명·51) 씨가 딸 이지현(가명·17) 양의 부축을 받아 조심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가슴과 복부에 여덟 군데나 흉기에 찔린 김 씨의 배에서는 여전히 피가 배어 나왔다. 간신히 몇 걸음을 옮긴 후 다시 침대에 누우려던 김 씨가 극심한 고통에 몸서리쳤다. 힘을 줄 때마다 찾아오는 찌르는듯한 통증은 말로 표현조차 어렵다.
◆ 아들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건은 일어난 건 보름 전이었다. 자정을 막 넘긴 시각. 김 씨의 아들(19)은 큰 방에서 자고 있던 아버지를 흉기로 찌르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어 아들은 작은방에서 자고 있던 김 씨를 안방으로 부른 후 흉기로 마구 찔렀다. 엄마의 비명 소리에 잠에서 깬 딸이 안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문을 열지 못했고, 경찰이 도착했을 때 김 씨는 이미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급히 병원에 옮겨진 김 씨는 두 차례에 걸쳐 응급수술을 받은 뒤 일주일 간 중환자실에 머물렀다. 워낙 상처가 크고 깊어 회복을 장담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목숨을 건진 것만해도 다행이지만 아직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심하다. 김 씨는 "횡경막에 생긴 상처는 잘 낫지 않아 경과를 지켜보는 중"이라며 "3차 수술을 받아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김 씨의 아들은 자포자기한 모습으로 경찰에 붙잡혔지만, 여전히 범행동기는 입을 다물고 있다. 아들이 왜 칼을 휘둘렀는지 김 씨도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김 씨는 "아들과는 아무런 다툼이 없었다. 2년 전 병역특례로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면서 주·야간 교대근무가 힘들었던 것 같고 부모의 건강이 좋지 않아 걱정이 많은 것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라고 했다.
김 씨의 남편은 10년쯤 전 심한 신부전증으로 신장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2012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을 받고 있다. 김 씨는 유방암 3기로 2016년 3월에 수술을 받은 뒤 항암치료를 하는 등 건강 문제로 걱정이 많았다.
◆ 충격에 말 잃고 눈물만 흘리는 딸…
오빠의 손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조차 심하게 다친 모습을 지켜본 딸 이 양 역시 심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간호사가 돼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게 꿈인 이 양이지만 앞으로 자신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건 직후부터 하루 종일 곁에서 수습을 도와준 피해자보호전담경찰관도 이 양의 얼굴을 제대로 못 봤을 정도로 이 양은 고개를 숙인채 눈물만 흘렸다. 사건 발생 사흘 뒤 만난 주민센터 사회복지사도 대화를 전혀 나누지 못하고 돌아왔을 정도로 상심이 컸다.
다행히 서울에 살던 이 양의 이모가 한 달간 곁을 지켜주기로 했고, 현재 경찰의 도움으로 범죄피해자지원기관에서 지내며 심리상담치료도 시작했다. 어머니도 고비를 넘기면서 현재 이 양은 점차 안정을 찾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문제에 대한 걱정도 크다. 임시 주거지원은 한 달만 보장돼 거처를 옮길 준비를 해야 한다. 당장 목돈도 필요한 상황이다. 김 씨가 중환자실에서 일주일간 있으며 쌓인 치료비만 700만원이 넘는다. 하루 7만원의 간병비까지 더하면 매달 받는 기초생활수급비 80만원으로는 기본적인 생계를 꾸리기도 어렵다.
힘든 상황이지만 이 양은 오늘도 어머니 곁을 지킨다. "엄마가 빨리 낫는 것만 바랄 뿐이에요" 오랜 침묵을 지키던 이 양이 말했다.
댓글 많은 뉴스
[기고] 박정희대통령 동상건립 논란 유감…우상화냐 정상화냐
정청래, 다친 손 공개하며 "무정부 상태…내 몸 내가 지켜야"
양수 터진 임신부, 병원 75곳서 거부…"의사가 없어요"
‘1번 큰 형(러시아)과 2번 작은 형(중국)’이 바뀐 北, 中 ‘부글부글’
이재명, 진우스님에 "의료대란 중재 역할…종교계가 나서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