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혼돈의 대한민국, 종교 지도자에게 듣는다] <1> 조환길 천주교대구대교구장(대주교)

"자기 삶을 살더라도 상대 인정하고 존중해야 갈등 치유"

천주교대구대교구 조환길 대주교.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천주교대구대교구 조환길 대주교.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사회가 너무도 혼란스럽다. 정치권은 좌우로 나눠 극한대결을 벌이고, 경제는 내우외환에 빠져 국민의 삶은 참으로 고단하고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어지럽고도 힘든 세상을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야 할지 종교지도자들에게 길을 물었다.

-지난해는 계층간, 세대간, 남녀간 갈등이 극에 달한 해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 사회가 혼란해지고 있는 것일까요?.

▶사회가 어려워지고 혼란스러워진 데는 이기주의, 개인주의, 물질만능주의, 세속화, 도시화 등 여러 가지 영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또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사람들이 관계중심, 공동체보다는 자기자신에게만 빠져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셜미디어는 소통을 위한 것인데 오히려 개인의 즐길거리, 끼리끼리 문화를 만들어내면서 자신과 함께 속해있지 않는 사람은 멀리하고, 배척하고, 혐오하는 풍조가 심화되면서 역기능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재난, 전쟁, 폭력 등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다 보니 더 혼란스럽고 느껴지는 충격이 더 큰 것이라 여겨집니다.

예전에는 마을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품앗이, 두레 정신이 있었는데 이런 정신이 무너지고 있어요. 국가나 종교가 해결하기엔 세상과 개인이 너무나 빠르게 바뀌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보수우파와 진보좌파간 진영대결 등 사회·정치·경제적 갈등이 심각합니다. 원인은 무엇으로 보시고, 또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왕조시대에서 일제강점기, 6·25 전쟁, 산업화, 민주화 시기를 불과 100여년 만에 다 겪다보니 제도와 심성의 부조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특히 대변혁기를 일제강점기 시절에 겪으면서 좀 틀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일제 지배를 받으며 고통과 갈등이 얼마나 심했겠어요. 해방이 됐지만 강대국에 의해 나라가 나눠지고, 6·25 전쟁을 겪게 되고 이후 남북 갈등 고착과 좌우 갈등이 심해졌어요. 그런 것이 지금까지 정권이 바뀌어도 연장되고 한국 정치사에서 하나의 원죄처럼 됐어요.

서양의 경우 집권 정당이 바뀌어도 큰 차이가 없지만. 우리는 정치에 받는 영향이 너무 큽니다. 정당이 정권을 잡는데 목적이 있다지만 정권 중심의 정치가 되다보니 서로 혐오하게 되고, 국민들까지 반목과 혐오에 빠지게 만들었어요. 상대방을 공격함으로써 자기가 산다는 논리도 있겠지만 반드시 한쪽에 속해야 한다는 게 잘못됐다고 봐요. 이런 것들에 대한 치유와 회개가 필요합니다.

천주교대구대교구 조환길 대주교.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천주교대구대교구 조환길 대주교.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그렇다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은 누가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가나 종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의식이 나아져야 합니다. 국민들은 쉽게 영향을 받고, 휩쓸리고 정치는 자기 편과 패거리 프레임을 만들어 표를 얻는 상황에서 종교나 뜻있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도 잘 해결되지가 않습니다.

결국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간성과 공동체의식 회복이 중요합니다. 교황님도 관용, 포용에 대해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10가지 행복비법' 가운데 '다른 사람의 삶을 인정하라, 관대해져라, 겸손하고 느릿한 삶을 살아라,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줘라, 자신의 신념·종교를 강요하지 마라, 평화를 위해 노력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속에 모든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삶을 살더라도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존중한다면 갈등과 혐오가 치유될 수 있지 않겠어요. 미디어에서도 부정적인 내용만 보도하고, 사건사고, 싸우는 모습이 더 많이 노출되는데 좋은 이야기, 미담을 많이 보도하면 국민의 마음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난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문화·체육계의 힘있는 자들에 의한 '갑질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문제일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미투문제, 갑질논란은 그 전에도 존재했지만 최근에 많이 불거지면서 사회가 홍역을 치르고 있는데 개인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 분위기도 관련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돈과 권력, 힘이 있으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잘못된 문화가 있어요. 우리 안에 있는 이런 문화가 해소되어야만 합니다. 덴마크인들에게 통용되는 얀테의 법칙이란게 있어요. 내용을 보면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다른 사람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자만하지 말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할거라 생각하지 말라,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마라,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것이에요. 얀테의 법칙처럼 겸손과 포용의 정신을 갖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남북교류협력 시대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종교 특히 가톨릭교회가 어떤 역할을 할수 있겠습니까?

▶교황님은 교황청이라는 독립된 국가의 수장이면서 정신적 지도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쿠바 핵미사일 사태 때 미국 케네디 대통령과 옛 소련의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을 중재한 분이 요한 23세 교황님이었고, 현 교황님은 미국과 쿠바가 외교관계를 다시 맺을 때 중재를 했어요.

남북관계도 잘 풀려야 하는데,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정착이 이뤄지는데 있어서 교황님이 할 수 있는 일은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표명했으니 기대해 봅니다.

저도 평양에 두 번 다녀왔어요. 2000년 김순권 옥수수 박사가 북에 개량종을 보급할 때 교구에서 비료를 지원했어요. 이때 초대를 받아 갔어요. 2015년 12월엔 민족화해위원회 일원으로 갔습니다.

천주교대구대교구도 알게 모르게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계속해 왔습니다. 국제카리타스를 통해 생필품, 약품(결핵 퇴치) 등을 많이 보내고 있어요.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지원을 할 준비가 돼 있고, 교회별로 북한지원기금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사회·문화환경에 부응하기 위해 천주교 안팎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나라 경제가 어려웠을때 가톨릭교회가 복지사업을 많이 맡았어요. 하지만 일부 기관의 운영과정에서 잘못이 드러나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잘못은 잘못입니다. 변화에 대한 의식이 부족했어요. 앞으로 이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는 선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복지사업도 함께 합니다. 하지만 교육·복지 분야에서 정부의 지원과 역할이 확대되면서 이제는 교회가 꼭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은 정리할 것입니다. 이런 기조에서 쇄신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나쁜 시각으로 보면 끝이 없는 것이고, 일일이 대응하기보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으면서 묵묵히 가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복지사업도 대규모보다는 소규모로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 15명이 모여 있는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관리가 효율적이고 주민들의 반대도 없어요. 대규모 시설은 예산도 문제지만 인근 주민들이 반대합니다. 장애인과 그 부모들도 탈시설이 아닌 작은 시설을 원해요. 국가가 당장 해줄 수 없으니, 교회가 작은 시설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모델이 될 것입니다.

교구장을 맡은지 10년이 다 돼 가는데 맡은 소임을 수행하는데 무거운 책임을 느낍니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말이 딱 와닿네요.

-대구경북 시도민들에게 새해 덕담을 해주신다면?

▶올해는 60년 만에 찾아온 황금돼지해라는데 모든 사람들이 기대하듯이 풍요로운 한해,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찾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국민이 하나가 되고,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일에 교회가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겠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정리·김봄이 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