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한도(歲寒圖) 단상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얼어붙은 한겨울. 초라한 집 한 채를 사이에 두고 앙상한 고목이 가지에 듬성듬성 잎을 매단 채 떨고 있는 한 폭의 그림은 바라보기만 해도 으스스 한기가 든다. 조선조 후기 명필가이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그린 '세한도(歲寒圖)'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무슨 말을 남기고자 했을까?

'세한도'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너무도 단조롭고 살벌한 그림의 배경에 의아해 하며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이 그림은 궁중 도화서(圖畵署) 전문화원의 그림도 아닌 선비가 그린 단순한 문인화(文人畵)에 불과하지만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추사는 1840년 54세 무렵 사색당파에 희생되어 바다 멀리 외딴 섬 제주도에서 혹독한 정치보복을 당하고 있었다. 조강지처를 잃고 절친한 친구의 부음까지 전해 듣었으나 갈 수 없는 죄인의 몸이었다.

그 무렵 제자 이상적(李尙迪․1804-1865)은 역관(譯官)으로 사신을 따라 중국에 오가며 경세문편(經世文編) 등 귀중한 서적을 구해 추사에게 보냈다. 홀로 힘든 유배생활을 보내고 있는 스승을 위로함이었다. 권력자에게 이 서적을 상납했더라면 출세길이 여릴 수도 있었으나 그는 결코 스승을 잊지 않았다. 이에 감동한 추사는 무언가 선물로 보답하고 싶었지만 유배된 신세라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전하는 것 뿐이었다.

하여 문득 떠오른 것이 공자의 논어 한 구절. '歲寒然後知 松柏之後凋(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 즉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구절을 떠올리며 붓을 든 그는 자신의 처지와 제자 이상적의 변함없는 의리를 절감하며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여기에 '歲寒圖'라는 화제(畵題)를 덧붙이고 혹한에도 시들지 않는 늘푸른 소나무와 잣나무를 비유해 '長毋相忘(장무상망), 즉 나는 그대의 마음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이니 그대 또한 나를 잊지 말게나'를 일필휘지(一筆揮之)했다.

유난히 추운 올 겨울, 새삼 '세한도'가 생각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절박한 나랏일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의 눈치나 보면서 연연하려는 자들에게 한겨울을 맑은 정신 하나로 견뎌내는 선비의 절개와 의리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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