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화사 지방학림 승려들도 만세독립운동 펼쳤다

대구불교총연합회는 17일 MH컨벤션 6층 그랜드홀에서
대구불교총연합회는 17일 MH컨벤션 6층 그랜드홀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불교학술세미나'를 열었다. 발제자와 지정토론자가 토론을 벌이고 있는 모습. 대구불교총연합회 제공

"동화사 지방학림의 젊은 승려들이 일제의 탄압과 감시 속에서 두려움 없이 만세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은 3·1운동을 전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더욱 확대시키는 역사적 의의를 담고 있습니다."

(사)대구불교총연합회(이하 대불총)는 17일 오후 3시 MH컨벤션 6층 그랜드홀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불교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3·1운동 100주년 관련 불교계 학술세미나는 대구경북에서 처음 열려 세간의 관심이 높았다.

김일수 경운대 교수는 '대구지역 사찰 중심으로 본 3·1운동'이란 주제 발제에서 동화사 지방학림 젊은 승려들의 만세운동 활동에 주목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불교계가 3·1운동 확산에 기여했음에도 제대로 평가되지 않아 재조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발제에서 동화사 지역학림 소속 승려 10명 주도로 1919년 3월 30일 대구 덕산정 동문시장에서 인파가 많이 붐비는 장날 오후 2시를 기해 면직물로 만든 태극기를 앞세워 시장을 누비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그 때 만세운동 시위에 가담한 군중만 2천명에 달해 시위 규모가 엄청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급보를 받은 일본 군인과 경찰들이 달려와 총검으로 군중을 해산시키고 주동한 승려 10명을 모두 현장에서 검거해 투옥시켰다고 한다.

"모두 조선민족으로서 조선의 독립을 희망함은 당연한 본무이다. 조선독립 일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해 만세를 부른 것이다." 승려들은 재판 과정에서도 만세운동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동화사 지방학림 승려들의 만세운동은 중앙학림 3·1만세운동에 참가했던 윤학조 승려가 고향인 팔공산 공산에 내려와 만세운동을 권유하면서 일어났다"며 "학림 승려들은 만세운동 이틀 전 동화사 심검당에서 결의를 다지고 하루 전 동화사 포교당인 대구 보현사로 내려와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만들어 다음 날 만세운동을 벌였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당시 3월 8일 서문밖 시장과 3월 10일 덕산정 시장에서의 두 차례 만세시위에 이어 30일 일어난 동화사 학림 승려들의 만세운동은 대구 만세 열기를 뜨겁게 달구는 계기가 됐고 3·1만세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학림 승려들의 만세운동 현장인 덕산정 동문시장은 옛 대구읍성 남문과 보현사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만세운동 현장인 동화사 심검당, 보현사, 덕산정 동문시장 등 3곳을 우선적으로 3·30정신 계승을 위한 유적지로 개발해 역사적 의미를 새겨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기했다. 또 만세운동을 주도한 승려 10명 중 3명만 독립유공자가 된 것은 아이러니한 현실이라며 포상을 받지 못한 승려들도 하루빨리 포상이 이뤄져야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전보삼 만해기념관 관장의 '3·1정신과 만해 한용운', 김성규 영남대 교수의 '원효 화쟁사상과 현대적 의의'에 대한 발표도 있었다.

효광 대불총 회장(동화사 주지 스님)은 세미나 인사말을 통해 "20대 나이의 동화사 지방학림 학생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은 역사적으로 대단한 정신"이라며 "오늘 세미나가 불교계 과거 100년을 반추했다면 올 가을 세미나는 미래 100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을 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불총은 이날 세미나를 마치고 오후 5시부터는 불교계 인사, 정계, 기관 단체장, 신도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로 덕담을 나누며 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신년하례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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