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또래와 어울리지 못한 나는 동네 머슴방을 찾곤했습니다. 전국 각지 출신들이 청송에 몸종으로 팔려온 이들은 놀음판을 벌이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여기에서 장화홍련, 콩쥐팥쥐, 흥부놀부 같은 이야기를 책을 읽지 않아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이번 소설도 거기서 귀동냥한 것을 정리했다고 보면 됩니다."
1939년생인 소설가 김주영 작가가 신작 소설 '아무도 모르는 기적'(문학과지성사)을 냈다.
이 책이 주목받는 것은 팔순이 넘은 나이에 그가 수십년간 써온 소설의 방식을 새롭게 바꿨기 때문이다. 이번 신작은 그가 주로 쓰던 장편소설이 아닌 단편 동화다.
28일 김 작가를 청송에 있는 주왕산관광호텔에서 만나 그의 신작에 관해 물었다.
김 작가는 "글쟁이가 늙었다고 글을 안 쓸 수는 없고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길게 쓰는 소설보다는 짧은 글이라도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며 "이번 동화 소설도 전 연령이 읽을 수 있는 내용을 다루면서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고 말했다.
김 작가의 신작 소설 '아무도 모르는 기적'은 1950년대 작가의 고향인 청송 장터가 배경이다. 산골에만 살던 여덟살 꼬마가 아버지를 따라 장터에 처음 나와보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지고 때로는 과격하고 거부감이 느낄 정도의 풍경을 통해 어른들의 세상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꼬마는 장터 구경에 혼이 빠져 아버지를 놓치게 되고 이웃 주민의 도움으로 집을 향하는 화물트럭을 타게 된다. 가는 도중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면서 어른들의 냉정함과 교활함까지 알게 된다는 것이 내용이다.
이 소설에는 김 작가의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는 "소설에서 나온 꼬마의 나이쯤 나는 어머니라고 불러야 할 분이 넷이고 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분이 둘이었기 때문에 복잡한 가족사를 안고 있었다"며 "이런 가족사 때문에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혼자 청송 장터에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훗날 이 경험이 내 소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도 재치있는 필력과 풍부한 경험 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주인공 꼬마가 장터를 처음 둘러보는 내용이 있는데 이 모습을 4줄이나 되는 긴 문장으로 표현했다. 작가는 꼬마의 시선을 따라 이곳저곳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급박하고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긴 문장을 선택했다. 이 때문에 읽는 이는 마치 장터 한복판에 주인공 꼬마와 함께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생동감을 느끼게 된다.
소설에서 호랑이가 나타났을 때 화물트럭에 탄 어른들은 "일본 놈들이 씨를 말렸다고 장담했던 조선 호랑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내용은 청송의 아픈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왕산에는 지난 2007년 12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사라진 내원마을이 있다. 이 마을의 다른 이름은 바로 '호랑이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이 호랑이를 수호신으로 모시며 동제를 지냈다는 역사적 기록도 있다.
하지만 1940년쯤 일제강점기 때 주왕산 금은광이삼거리에서 목재와 광물 등을 약탈했던 일본인들이 호랑이에게 습격을 당하자, 그들이 대규모로 사냥꾼을 풀어 주왕산에 호랑이가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후반부에는 어른들이 주인공 꼬마를 호랑이 밥으로 던져준 뒤 도망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이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는 존재가 아니고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던 것. 소설의 이 내용은 주왕산 주민들이 호랑이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것과 상통하기도 한다.
팔순의 김 작가는 작품에 대한 열정은 청춘이다. 그는 단편소설을 매년 1권씩 낼 예정이며 장편소설 또한 준비하며 왕성한 정력을 보여줬다.
김 작가는 "머슴과 식모, 똥, 버드나무 등의 소재로 예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온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이 소재와 내 상상력을 더해 단편소설을 쓸 예정"이라며 "'옷갓마을이야기'란 제목의 장편소설도 쓰고 있는데 내용은 '세대 간의 가치관 충돌'"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지키는 가치관과 나처럼 옛날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관은 차이가 나고 때론 충돌이 일어난다"며 "이런 내용을 재미있는 소설 이야기로 풀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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