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창] 결혼은 미친 짓인가

채형복 경북대 로스쿨 교수
채형복 경북대 로스쿨 교수

연애 결혼 포기하는 청춘남녀 늘며

출생률도 덩달아 떨어져 위기 상황

법률혼 중심 전통 관념에서 벗어나

佛 계약결혼 가족형태 도입 고민을

2002년 유하 감독이 만든 '결혼은, 미친 짓이다'란 영화가 인기리에 상영되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준영(감우성 분)과 연희(엄정화 분)는 처음 만나 스스럼없이 성관계를 한다. 얼마 후 그들은 결혼한 척 가족을 속이고 신혼여행을 가고 부부처럼 행동한다. 이 영화는 속칭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는 이성교제란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어야 한다는 도덕적 엄숙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여전히 서로 사귀면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청년들이 앞다투어 결혼하지는 않을 것 같다. 기성세대의 바람과는 달리 청년들은 아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하고 있는 최근 혼인 통계를 보면, 청년세대의 결혼에 대한 인식과 세태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 2017년 기준 혼인 건수는 26만4천500건으로 1974년(25만9천600건) 이후 가장 낮다. 20대 10명 중 6명은 결혼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니 앞으로도 혼인 건수는 계속 줄어들 전망이다. 적정 인구 규모를 국가경쟁력의 근간으로 보고 있는 시각에서 보더라도 청년들의 혼인율 감소는 우리 사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리 민법은 혼인신고를 기준으로 부부관계를 인정하는 법률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제812조 1항) 사실혼 부부는 혼인신고를 할 수 없으니 서로 아무리 사랑하고 오래도록 살아도 법률상 인정되는 부부가 아니다. 형식적 절차 요건인 혼인신고를 기준으로 사실혼 부부와 법률혼 부부를 이렇게 차별해도 좋을까? 또한 법적 문제를 떠나 사실혼 부부는 '불륜관계'라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평생 심적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다.

인구절벽으로 국가경쟁력 저하 운운하면서도 구태의연한 결혼제도만을 고집하고 있는 우리의 태도는 바람직할까? 사회가 발전하고 진보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걸맞은 합리적이고 새로운 가족제도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가족 형태로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 pacte civil de solidarite)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프랑스에서 부부가 함께 사는 방식에는 동거, PACS, 법적 결혼 등 3가지가 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전통적인 결혼은 점차 감소하는 반면 PACS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2012년의 통계에 의하면, 이성 남녀 가운데 94%가 PACS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전체 혼인에서 결혼이 차지하는 비율은 6%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법률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적잖은 충격이다.

PACS로 대표되는 다양한 가족정책의 실시는 곧바로 출생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1970년 2.64명이던 프랑스의 출생률은 2000년 1.97명으로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적극적인 출생장려정책으로 2010년 1.97명으로 높아졌고, 2015년에는 2.1명으로 유럽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우리나라에서도 PACS와 같은 제도 도입이 시도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4년 당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약칭 '생활동반자법') 발의를 준비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혈연과 혼인관계로 이뤄지지 않은 동거 가구도 가족으로 보고 법적'제도적 보호를 받게 하자는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되었더라면, 애인'친구와도 법적 가족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을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법률혼 중심의 전통 관념에서 벗어나 PACS와 같은 새로운 가족제도를 도입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서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동반자로 살고 있다면, 그들의 권리를 법'제도적으로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청년들이 결혼은 더 이상 미친 짓이 아니라 축복임을 아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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