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론새평] 광주가 하면 '전략적 선택'이고, 대구는 '꼴통'인가?

천영식 KBS 이사,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초빙교수. 전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

천영식 kbs이사
천영식 kbs이사

갈라치기 어법 구사하는 文대통령

TK를 남북관계 발목잡는 사람 취급

정권이 짜놓은 프레임에 갇힌 TK

좀 더 자신있게 행동하고 당당해야

문재인 대통령의 레토릭이 최근 표독스러워졌다. 그 레토릭 가운데 특히 문제는 갈라치기 어법이다.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2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개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발목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색안경을 던지고 우리에게 다가온 기회를 붙잡는 데 전력을 다하자는 말씀을 드립니다"고 말했다. 길지 않은 모두 발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발목 잡는 사람'을 비난하는 데 있었다.

하노이 회담은 예기치 않게 결렬됐다. 문 대통령의 어법대로라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중 한 명이 발목 잡은 사람이다. 색안경을 끼고 다가온 기회를 던져 버린 사람이다. 누구일까?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다음 날 3·1절 기념사에서 '발목 잡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따끔한 충고를 할 줄 알았다. 문 대통령은 그런데 정작 그날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고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느닷없이 '빨갱이 타령하는 사람'을 적으로 몰았다.

문 대통령의 레토릭에는 분명한 목적과 타깃이 있다. 발목 잡는 사람이나 빨갱이 타령하는 사람이나 모두 문 대통령에 대한 반대파를 의미하는 것으로 들렸다. 대통령 연설이라는 소중한 레토릭이 항상 갈라치기 어법을 통해 반대파를 공격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더 문제는 인식의 오류이다. 남북관계의 과속을 걱정하는 사람을 발목 잡는 사람들로 매도할 수 없다. 하노이 회담 결렬에서도 나타났듯, 미덥지 않으면 판을 깨야 하는 게 정상이다.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빨갱이로 표현하는 사람은 더더욱 지금 없다. 그 대신에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과 과도한 유착을 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즐비하다. 그들을 겨냥한 건가.
지난해 9월 평양에서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때, 유독 대구경북(TK) 사람들만 반대 여론이 높았다. 용감한 선택이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골고루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걱정하고 있지만, 당시만해도 그렇지 않았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에서 TK 민심은 지난해 8월과 9월부터 문 대통령 지지 여론보다 반대 여론이 높아지는 데드크로스(dead-cross)가 벌어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의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TK는 유일하게 냉정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지금의 하노이 회담 결렬을 내다봤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상황을 홀로 차분히 바라본 '앞서간 TK 민심'이 문 대통령에게 발목 잡는 사람들이고 빨갱이 타령하는 사람들일 수 있다.

당시 광주·전라 지역은 문 대통령에 대해 82%의 긍정 지지로 뜨거운 신뢰를 유지했다. 광주가 하면 서울이 따라가고 전국적 현상이 된다고 보는 게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의 세계관이다. 이것이 이른바 광주의 여론을 '전략적 선택'으로 미화하는 일로 발현되는 것이다. 호남의 찰떡 같은 지지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게 TK 고립화 전략이다.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 선출을 마치 태극기부대의 선택이나 극우 정당, 박근혜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것도 마찬가지 뿌리에서 발생하고 있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대선후보 경선을 하면서 처음으로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누른 곳은 호남지역 경선이었다. 호남에서 노무현이 승리하자, 전략적 선택 운운하며 치켜세웠고, 이 힘이 경선 승리로 이어졌다.

TK 민심은 왜 호남과 같은 취급을 받지 못할까. 황교안의 한계는 앞으로 본인이 풀어야 할 과제일 뿐이며, TK의 선택은 정당한 권리 실현이다. 나는 매사에 TK도 전략적 선택이라고 과감히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자신 있게 행동하고 당당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TK는 여전히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짜놓은 프레임의 밥이다. 그리고 갈라치기의 대상이다. 이런 기울어진 분위기하에서는 '광주형 일자리'가 만들어질 뿐 '대구형 일자리' '구미형 일자리'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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