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주 "사유지에 설치한 공원시설물 철거하라" vs 대구시 "개발 불가능한 임야, 논밭까지 사들일 수 없어"

공원일몰제를 앞두고 대구시는 도심공원을 모두 보존하고 싶지만 사유지를 전부 매입할 재정 여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땅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범어공원이 가장 큰 논란을 빚는 중이다. 지주들은 부지 매입을 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재산권을 행사해 법적 공방까지 불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9일 대구 범어공원 지주 비상대책위 관계자가 공원 사유지 내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철조망이 훼손되자 장애물을 제거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9일 대구 범어공원 지주 비상대책위 관계자가 공원 사유지 내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철조망이 훼손되자 장애물을 제거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개발 불가'에 뿔난 지주, "민·형사 책임 묻겠다"

9일 오전 대구 수성구 황금네거리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를 따라 범어공원을 오르자 철사를 엮어 만든 철조망들이 등산로를 막고 있었다. 황금네거리에서 대구여고로 이어지는 등산로 중 사유지에 해당하는 14곳에 철조망이 설치됐다.

철조망은 범어공원 지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대구시의 도심공원 민간 특례사업 조성 불허 방침에 반발해 공원 부지 내 사유지 곳곳에 설치한 것이다.

설치 한 달이 지난 현재 철조망 곳곳에는 끊어진 부분을 이어붙인 흔적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지주가 설치한 철조망을 공원 이용객이 훼손하고, 이를 지주가 매주 30만원씩 들여 복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도 누군가 굵은 나뭇가지로 철조망을 눌러놔 통행에는 불편이 없었다.

비대위는 민간 특례사업을 통해 개발사업이 시행되면 지금까지 제한됐던 재산권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지난해 12월 대구시는 범어공원에 대한 민간개발 사업제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기대했던 개발이 틀어지자 비대위는 철조망으로 시민들의 통행을 막는 한편 지난달 말 대구시에 공원 시설물 철거 및 원상 복구를 요구하며 법적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지주들은 지금이라도 대구시가 개발 의지만 보인다면 당장 철조망을 철거하겠다는 입장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이용객 통행을 막기보다는 지주들의 재산권 사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현실적인 보상을 받도록 대구시가 문제 해결 의지를 보여달라"고 주장했다.

대구 수성구 범어공원 내 사유지 지주들이 내 건 수성구와 대구시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공원 곳곳에 내걸려 있다. 이들은 대구시가 내년 공원 일몰제를 앞두고 범어공원 도로 주변 일부 땅만 수용해 안쪽 사유지를 맹지로 만들어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성일권 기자sungig@imaeil.com
대구 수성구 범어공원 내 사유지 지주들이 내 건 수성구와 대구시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공원 곳곳에 내걸려 있다. 이들은 대구시가 내년 공원 일몰제를 앞두고 범어공원 도로 주변 일부 땅만 수용해 안쪽 사유지를 맹지로 만들어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성일권 기자sungig@imaeil.com

◆市, "난개발 예상지, 공원시설 점유지 임차 또는 매입"

대구시는 공원일몰제 시한이 도래할 때까지 일부 부지만 매입해 공영개발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공원 내 사유지 모두를 매입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들 것으로 예상되고, 민간 특례사업을 허용했다가는 범어공원 내 임목·문화재 훼손과 주변 교통난 심화가 우려된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시는 공원일몰 이후 난개발이 예상되는 핵심 부지 몇 군데를 우선 매입할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공원 내 다른 부지는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일종의 '맹지'(盲地, 눈먼 땅)가 돼 개발이 어려워진다. 더구나 다른 사유지 대부분은 애초 토지 이용 목적이 전답(논밭)이나 임야(녹지)여서 행정 절차를 밟아 이용 목적을 변경해야만 개발할 수 있다. 특히 임야는 산림법에 따라 벌목 등 개발이 제한된다.

시는 1단계로 내달까지 대구여고 뒤편 부지 1만3천866㎡를 사들이고자 매입 공고를 낸 상태다. 이후 ▷2단계로 오는 7월쯤 캐슬골드파크 인근 부지 5만3천764㎡ ▷3단계는 내년 중 다른 부지 6만7천㎡를 각각 매입할 계획을 세웠다.

대구시는 사유재산권 보장을 주장하는 지주들과 협의를 통해 갈등을 풀겠다는 입장이다. 비대위가 제기하는 소송에 맞서거나, 공공시설 부지에 개인이 무단 설치한 철조망을 강제 철거하는 '행정대집행'도 검토할 수 있지만 적절한 대응책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게다가 공원일몰제 시행 후에는 지주가 사유지에 설치한 철조망을 사유물로 볼 수 있을지 여부도 현재 입법이나 정부 가이드라인으로 정해지지 않은 만큼 당분간은 현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대구시 관계자는 "공원을 조성한다고 해서 개발 불가능한 사유지까지 반드시 사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주들과 꾸준히 만나 입장을 충분히 듣는 한편 공익과 사익의 균형을 맞출 합리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공원일몰제 =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원 설립을 위해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한 뒤 20년이 넘도록 공원 조성을 하지 않았을 경우 도시공원에서 해제하는 제도다. 헌법재판소가 1999년 10월 '지자체가 개인 소유의 땅에 도시계획시설을 짓기로 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으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도시계획법(4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도입됐다. 이에 따라 2020년 7월 1일부터 공원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은 본래의 땅 주인에게 재산권이 반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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