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생명 존중을 실천하는 법 캣맘들, 굶다 죽을 수 있는데 모른 체할 수가…

손분이 씨가 유기묘
손분이 씨가 유기묘 '나비'를 돌보고 있다. 강민호 기자 kmh@imaeil.com

버려진 동물을 보살피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동네에서나 '캣맘(Cat Mom.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으로 불리는 이들에 대한 호불호는 극과 극이다. 불쌍한 동물을 돌본다고 응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은 지저분한 동물을 주거지 인근으로 불러들인다며 달갑지 않게 여긴다. 유기동물에게 밥을 주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이 캣맘이 된 공통된 이유는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 때문이다. 누군가는 키우던 동물을 버리지만 다른 한 편엔 이들을 다시 거두어 살피는 따뜻한 손길도 공존한다.

◆민간인 수의사

손분이(54) 씨는 동네에서 유명한 캣맘이다. 그녀는 어딜 가나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문제로 주민들과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잦았다. 때문에 손 씨는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고양이 밥을 두는 장소를 여러 번 바꾸어야 했다. 아파트 주차장 구석에서 쓰레기장으로, 다시 주민 양해를 구해 아파트 구석 한 쪽으로 옮겼다. 그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두 번 길고양이 밥을 책임진다.

손 씨가 길고양이 '나비'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이다. 늦은 밤 학교 운동장에서 나비를 발견했다. 밥을 못 먹었는지 심하게 마른 나비가 운동 중인 손 씨를 계속 따라다녔다. "길고양이는 먹을 것만 쫓아다니고 사람은 피하는데 나비는 누군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처럼 보였어요. 사람이 밥을 준다는 사실을 아니까 나를 쫓아온 거 아닐까 생각했죠." 손 씨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나비가 먹을 만한 것들을 챙겨 나왔다. 다음 날부터는 집근처에 고양이 집을 만들고 사료를 두기 시작했다. 사람의 손길을 기억한 걸까? 나비는 손 씨의 발등에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나비'라고 부르면 제 이름을 알아들은 냥 쫓아왔다. 자연스럽게 나비에게 밥을 주는 일이 손 씨의 일과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멀리서 다가오는 나비의 걸음걸이가 평소와 달랐다. 힘이 없고 어딘가 많이 불편한 모습이었다. 손 씨는 나비를 가까이서 보고는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어디서 물린 건지, 사고가 있었던 건지 상처가 흉측하더라고요. 진물도 나오고 쳐다보기에 너무 끔찍했어요." 발견 당시 나비의 등에는 오백 원 동전 크기의 구멍이 나 있었고 그 속에는 구더기가 꿈틀거렸다. 그녀는 구더기와 날 파리를 없애기 위해 살충제를 가져와 뿌리고 상처를 소독했다. 동물병원으로 가 나비의 증세를 설명했지만 길고양이 몸에 구더기가 생길 정도의 상처가 있다면 치료하기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녀는 직접 나비를 치료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물병원에서 항생제와 바르는 연고를 사왔다. 손 씨는 상처부위 주변 털을 밀고 소독과 치료를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신기했던 건 나비는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나비가 그녀를 믿고 자신을 맡기는 것처럼 보였다. 손 씨는 매일 소독하고 약을 바르길 반복했다. 열흘 정도 지났을까? 나비의 상처가 거의 다 아물었고 예전의 기력도 돌아왔다. 이름을 부르면 쫓아오거나 쓰다듬어줄 때는 애교를 부렸다. "고양이 밥을 주지 말라는 사람들도 이해해요. 하지만 나비도 다른 유기동물도 누군가 키우다가 버렸잖아요. 사람은 배고플 때 참거나 굶지 않아요. 한 때 사람이 거두었던 동물인데 굶어 죽는 걸 지켜보고 있어야 할까요. 제발 동물은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 키웠으면 좋겠어요."

◆사람을 찾습니다.

윤신애(39·가명) 씨는 최근 옆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때문에 고민이 많다. 얼마 전까지 옆집 이웃은 근처 빈 공터에 개집을 만들어 놓고 세 마리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윤 씨 가족은 지나는 길에 강아지 간식을 사 먹이기도 하고, 저녁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강아지와 함께 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옆 집 가족이 이사를 가버린 것이다. 옆 집 가족은 세 마리 강아지를 그대로 남겨둔 채 사라졌다. 강아지를 버린 것이었다. 윤 씨도 며칠 동안은 주인이 강아지들을 데리러 올거라 기대했지만 일주일 넘게 방치된 것을 보고 그제야 강아지들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매일 출퇴근길, 강아지들이 있는 장소를 지나다니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동물을 버리고 간 인간들이 미웠지만 남겨진 강아지에 대한 측은지심이 더 컸다.

윤 씨는 두 달 째 매일 아침, 저녁마다 공터를 찾아 강아지에게 물과 사료를 주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가 일찍 발견해 매일 밥을 주니까 강아지들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언제까지 제가 돌 볼 수는 없잖아요. 큰일이에요."

얼마 전 윤 씨는 강아지들을 보낼 유기견 센터를 알아보다가 찾기를 중단했다. 통상적으로 유기견이 긴급 구조된 후 일정 기간 안에 입양할 가족이 없으면 안락사를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름있는 품종도 아니고 제법 덩치도 커진 강아지를 입양해 갈 사람은 잘 없을 것 같았다. 강아지들과 정이 들었는데 안락사를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더군다나 최근 이슈가 된 '케어 사태'를 보면 강아지들이 구조가 되자마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신고를 망설이고 있다. 윤 씨는 현실적으로 세 마리나 되는 강아지를 끝까지 돌봐줄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유기견 신고를 안하고 기다리자니 성견이 되어버린 강아지가 주민을 위협하거나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언젠가 저도 이사를 갈 텐데 그때는 유기견 보호센터에 연락해야하지 않겠어요? 그 전에 제발 강아지들 주인이 나타나 책임진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요."

캣맘 정봉자씨는 길 고양이들이 배를 굶지 않도록 17년째 하루 두번 먹이를 주고 있다. 강민호 기자 kmh@imaeil.com
캣맘 정봉자씨는 길 고양이들이 배를 굶지 않도록 17년째 하루 두번 먹이를 주고 있다. 강민호 기자 kmh@imaeil.com

◆고양이 할머니

'고양이 할머니' 정봉자(68) 씨는 40년 째 염매시장 인근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백화점이나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 있지만 예전 이곳 일대는 한옥집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오랜 이웃이 많아 서로 왕래가 잦은 동네인데 정 씨가 십수년 째 이웃들 눈치를 보는 시간이 있다. 하루 두 번 길고양이 밥을 줄 때다.

정 씨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 건 17년 전부터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야옹이'가 집을 나갔다 며칠 후 돌아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야옹이'와 닮은 새끼 고양이가 집 근처를 서성였다. 야옹이의 새끼겠구나 싶어 집에서 키우려고 했지만 도망 다니는 새끼고양이를 잡을 수는 없었다. 계속 집 근처에 나타나는 고양이 새끼를 위해 배를 굶지 않도록 현관 앞에 사료를 놓아두었다. 이 때부터 정 씨의 집 앞에 길고양이가 몰리기 시작했고 이웃과의 갈등이 시작됐다. 고양이밥 위치를 옮기기도 수십 번, 사람 눈에 띄지 않고 고양이들이 드나들 수 있는 장소로 정했다. 길고양이를 거둔다고 싫어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못하지만 좋은 일은 하는 게 보기 좋다."며 응원하며 고양이 사료를 사다주는 이웃도, 고양이가 드나드니까 쥐가 없어졌다며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 씨는 고양이 사료 값으로만 매달 15만 원 이상 사비를 쓴다. 사료 외에도 다른 지출이 제법 있다. 로드킬 당한 고양이가 있으면 동물병원에 데려가 화장비용을 내 주기도 하고, 잘 걷지 못하는 새끼고양이에겐 통조림 사료를 준다. 새끼를 발견하면 집 안으로 데려와 키우다가 이웃집으로 분양을 보내기도 했다. 그녀는 고양이를 돌보는 일이 일상이기 때문에 지난 17년 간, 그리고 앞으로도 매일 고양이 밥을 주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로부터 배우는 것도 많다. 정 씨는 고양이들이 철저히 자기 영역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서의 의리는 대단하다고 말한다. "고양이는 다음 고양이가 먹을 수 있도록 딱 자기 양만큼만 먹어요. 고양이들도 십 수년 째 새끼의 새끼가 대를 이어 내가 주는 밥을 먹고 있을 테지만 그 질서는 깨지지 않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 얘들 밥 주는 걸 끊을 수가 없어요. 딱 정도를 지키는 고양이를 보면 사람인 저도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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