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과학둘레] 파랑은 그냥 파랑이 아니다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보기만 해도 상행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말 사고 싶지 않은 물건들 사이를 실눈을 뜨고 지나다 필자도 모르게 눈이 가는 곳이 있었다. 동물 표본을 진열해 놓은 곳이었다. 흉측한 박쥐 표본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자 필자가 탄 보트가 그곳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거기선 무얼 보든, 뭐에 놀라든, 뭔가 사야 할 거 같았다. 재빠르게 진열된 물건을 훑어본 필자는 태국의 수상시장에서 파란 나비를 샀다.

파란 나비는 중남미 아메리카에 주로 사는 모르포나비를 닮았다. 파란색은 동물에게서 발견하기 힘든 색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멜라닌 색소를 갖고 있어 검정이나 갈색 계열의 색을 띤다. 빨갛고 노란 새들은 그들이 섭취하는 먹이에 함유된 색소로 화려한 색깔을 갖는 것이다. 파랑새는 어떨까. 파랑새의 깃털도 검은 멜라닌 색소로 되어 있다. 검은색이 파랗게 보이는 이유는 또 다른 데 있다.

모르포나비는 날개를 살짝 기울여 보면 파란색 음영이 진하게 변한다. 다른 종의 나비 표본이 햇빛에 오래 노출되면 색이 바래지는 데 반해 그것은 변치 않는 사파이어처럼 영롱하다. 이는 나비의 파란색이 색소가 아닐 거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우리가 파랑새와 모르포나비를 파란색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깃털과 날개 비늘의 구조 때문이다.

모르포나비 날개 비늘의 횡단면을 주사전자현미경을 통해 보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생긴 미세 구조가 규칙적으로 촘촘히 들어차 있다. 1㎜를 1천 개로 나눈 것보다 작은 나노 간격이다. 백색광이 이렇게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면 트리의 가지 모양 구조에 빛이 부딪쳐 반사해 나올 때 회절이 일어난다. 회절은 빛이 좁은 틈을 통과할 때 퍼지는 현상이다. 회절하는 빛의 파장은 서로 간섭한다. 이때 길이가 비교적 긴 빨간색이나 노란색 파장의 빛은 서로 상쇄해 없어지고, 길이가 짧은 파란색 파장의 빛은 중첩해 날개를 강렬한 파란색으로 보이게 한다. 이렇게 정밀한 나노 단위 구조로 인해 빛이 분해되어 나타나는 색을 구조색이라 한다.

모르포나비는 수컷만이 구조색을 띤다. 그것도 등 쪽 날개만 파란색이다. 수컷의 안쪽 날개나 암컷의 날개는 멜라닌 색소로 되어 있다. 그들이 날개를 접고 있으면 낙엽으로 오인할 정도다. 수컷의 날개가 구조색으로 진화한 이유는 생식과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일 거라 추측한다. 화려한 색깔은 암컷의 눈에 잘 띄고 다른 수컷을 위협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날개 안팎으로 다른 색깔을 갖는 것은 날아가며 날개를 접었다 펼 때마다 색깔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여 적을 교란하는 데 효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에서 생물은 생존에 가장 적합한 형태를 갖추기 위해 진화를 거듭해왔다. 나비의 경우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 성충을 거치는 동안 다양한 생존 전략을 구사한다. 나뭇잎과 비슷하게 생긴 색으로 날개를 위장하거나, 애벌레의 경우 몸에 커다란 눈 모양 무늬를 만들어 나비의 천적인 새들이 그것을 자신의 천적인 뱀이나 부엉이로 오인하게 한다.

또한 독성이 있는 풀에 알을 낳아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그것을 먹고 자라며 서서히 몸에 독이 쌓이게 한다. 독 물질은 나비나 나방의 날개에 강렬한 색소로 나타나 성충이 되었을 때 화려한 날개를 갖게 한다. 새나 도마뱀, 거미는 요란한 무늬와 색깔의 나비를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비의 화려함은 위험을 나타내는 경고다.

한 해가 기울어간다. 넉 달 남짓 살아가는 모르포나비의 숨 가쁜 일생도 끝나간다. 나비의 목표는 한 가지. 알을 낳는 것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남기면 그들의 전략은 성공한 셈이다. 나비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략을 짜고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지 않다. 물론 사람은 추구하는 목표가 다양하고 성공의 기준도 각기 다르며 전략 또한 다채롭지만 말이다.

구조색은 빛의 마법이다. 빛의 마술을 부리는 나비의 전략은 때로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파랑은 그냥 파랑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최선이다. 먼 이국땅을 건너온 파란 나비가 등을 활짝 펴 보이고 있다. 당신의 최선은 무엇인지 묻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