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찰나에 대한 기억이고, 셔터를 누르는 이유는 훗날 이 시간을 추억하기 위함이다. 각자의 시간과 추억을 기록하는 사진은 이런 '감성적 코드'가 짙을수록 더 큰 여운과 감동을 준다. 이런 이유로 낡고, 오래되고, 불편한 구닥다리로 여겨졌던 필름카메라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빠르고 편리한 디지털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필름카메라에 다시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레트로 감성 묻어나는 필름카메라
최근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 '뉴트로'(Newtro) 열풍을 타고 2030젊은층을 중심으로 필름카메라(이하 필카)가 유행하고 있다. 빠르고 편리한 요즘 시대를 거스르고, 느리지만 그것 나름대로 매력 있는 예스러운 감성이 담긴 아날로그 유행을 따라 필카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SNS 인스타그램에서도 필카로 찍은 사진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해시태그로 구닥만 검색해도 게시글이 수십만 개가 넘는다.
카페 대구사진러브 회원인 박대명(40) 씨는 "필름카메라는 불편하지만 매력있다. 디카는 수백 수천장을 찍지만 36컷인 필름카메라는 함부로 찍을 수 없어 한장한장 신중하게 찍는다"며 "빛바랜 것 같은 사진은 현재를 마치 옛날처럼 느낄 수 있어 새롭다"고 말했다.
박정한(40) 씨 역시 "디카는 뭘 찍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필카는 심경써서 찍기 때문에 36장 모두 기억한다. 현상하면 찍은 장소는 어디며, 누구와 함께 찍었는지 추억할 수 있어 좋다"고 필카 예찬론을 펼쳤다.
디카에 빠져 있다 6개월 전 아버지에게 롤라이35s를 물려받은 김인선(23) 씨는 "로맨틱한 느낌이 들어 필카를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용돈을 모두 필름 값으로 쓸 정도로 푹 빠졌다"며 "현상한 사진을 보면 디카 사진보다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이고, 색감도 감성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서영(22) 씨는 얼마 전 유럽 여행을 가기 전 추억을 담기 위한 준비로 필카를 찾아 챙겨갔다고 했다. "깨끗하고 완벽하게 나오는 요즘 카메라보다 자연스러운 빛 번짐이 있고, 꾸며지지 않은 거친 질감의 필름 카메라가 더 좋다"고 말했다.
김혜선(대구가돌릭대 원예학과 3년) 씨는 "필카는 디카에 비해 거칠기도 하지만 그맛으로 찍는다. 찍은 사진은 SNS에 올려 마니아들과 공유하기도 한다"고 했다.
대학생 이석현(26) 씨는 "필름을 넣고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맞춘 뒤, 사진을 찍고 다 쓴 필름을 감아 현상을 하기까지의 기다림 등의 과정이 재밌고 설레며 흥미롭다"고 말했다.

◆개성, 감성, 신기함, 색감 등 디카에 없는 매력
필카를 좋아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디카가 따라올 수 없는 필카만의 색감과 감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필카의 매력은 사용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다. 지난해 구입한 중고 필카로 육아일기를 작성하고 있다는 박은영(34) 씨는 블로그에 "사진 속의 딸을 한참 들여다봤더니 너무 따뜻하고 사랑스러웠다"며 "디카로는 결코 이런 느낌을 못 살린다"고 적었다.
이원대(32) 씨가 느낀 아날로그의 강점은 역시 소통이다. "아버지가 1982년형 니콘 카메라를 사기 위해 당시 한 달치 월급을 털었었다고 하면서 저에게 조작법을 알려줬다. 필름을 손으로 감다가 빛이 닿으면 손상되는걸 모르고 실수한 적도 있다"면서 "군대 다녀와서 아버지랑 할 얘기가 별로 없었는데 이런 시행착오 등을 겪다보니 아버지랑 대화가 많아졌다. 필카를 배우면서 공통관심사가 하나 더 생겼다는 점에서 기쁘다"고 했다.
카메라 전문점 대표들은 젊은 사람들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경험 자체를 신기해하고, 아날로그를 불편함이 아닌 재미로 여기는 것 같다고 했다. 대구중앙지하상가에서 카메라 수리점을 운영하는 한 사장은 "필카를 이용하는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기존의 디지털 카메라와 다르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 것"이라면서 "필카는 모양도, 작동 방식도, 사진의 결과물도 모두 달라 디지털 카메라가 줄 수 없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북여고 앞에서 사진현상소를 운영하고 있는 노형태 포토매직 대표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깨끗하고 맑은 느낌을 내는 반면, 필름 카메라 앱으로 찍은 사진은 색 바랜 느낌이 난다. 게다가 사진인화를 하는 과정을 거치듯 찍고 3일이 지나야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이런 게 젊은층이 매력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노 대표는 이어 "디지털이 깨끗하고 완벽하다면 아날로그는 뭔가 빠진 느낌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필름이라는 막을 투과하기 때문에 그 필터링을 통해 뭔가 사라진 느낌, 그 90%정도되는 느낌이 소비자들이 볼 때는 100이 아니라 더 사람냄새가 난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평했다. 노 대표는 필카의 매력은 사진을 만들어내는 '긴 과정'에 있다고도 했다. 그는 "필름을 사고 사진을 찍고, 다 찍은 필름을 들고 다시 사진관으로 가야 한다. '아날로그 감성', '사진 색감' 등 필름 카메라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느낌이 20대를 자극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박스) 흑백 필름으로 사진 찍는 '석주사진관'
봉산문화거리에 있는 '석주사진관'은 대구에서 유일하게 흑백필름 사진을 찍는 사진관이다. 이석주 대표는 "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면서 필름 사진을 배운 마지막 세대다. 우리 세대가 필름 사진을 포기한다면 필름 사진은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흑백 필름 사진관을 차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흑백필름 사진의 매력은 피사체의 본질을 담는다는 데에 있다고 했다. "모든 색을 배제하고 피사체를 흑과 백으로만 표현해 눈의 피로감을 주지 않고 피사체의 모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필름 사진 특유의 입자감은 은은하고 정겨운 느낌을 자아낸다"고 했다.
이 대표는 필름의 특성을 모르는 어떤 고객은 촬영이 끝나자마자 결과물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기도 해 난감할 때도 있다고 했다. "필름으로 사진을 현상하려면 보름 정도 소요된다. 디지털 사진을 찍으면 당연히 따라오는 보정조차 필름 사진에서는 불가능하다"며 "흑백 필름 사진을 통해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마주한 고객이 '내가 정말 이렇게 생겼어요?'라며 당황하기도 하지만 사진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흑백사진이 풍기는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에 매료돼 매우 만족스러워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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