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의 아들이자 촉나라의 마지막 군주 유선과 신하 황호는 삼국지연의에서 세트로 언급된다. 유선은 촉나라를 망하게 만든 암군이고, 황호는 지근거리에서 유선의 입 역할을 한 환관이다.
유선의 총애를 받아 점차 권력이 커진 황호는 마음에 안 드는 인물들을 좌천시켰다. 훗날 삼국지정사를 쓴 진수와 촉나라의 마지막 명장이었던 나헌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황호에게 붙은 이들도 많았다. 이는 촉나라의 망조 가운데 하나였다.
황호는 위나라가 촉나라에 쳐들어오기 전 무당으로부터 '위는 촉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점괘를 받아 유선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반대로 제갈량의 후계자 강유는 위나라 침공 첩보를 바탕으로 유선에게 방비책을 건넸는데, 이를 황호가 묵살시켜버렸다. 앞서 황호는 강유를 촉나라 대장군 자리에서 쫓아내고 자기 사람 염우를 앉히려 했는데 이게 흐지부지된 바 있다. 결국 촉나라는 위나라에게 멸망당한다.
이후 황호는 어찌 됐을까? 그는 유선에게만은 충신이었다. 유선을 모시고 위나라에 항복했다. 그 다음 촉나라를 점령한 위나라의 등애에게 죽임을 당할뻔 했지만, 등애의 측근들에게 많은 뇌물을 줘 풀려났다고 한다.
이게 삼국지정사의 얘기이고, 현실에서 권선징악이 구현되지 못한 게 못마땅했던지 소설인 삼국지연의에서는 사마소(사마의의 아들, 당시 위나라의 권력자)에게 사지가 찢겨 죽은 것으로 나온다.
황호는 제갈량, 장완, 비의, 동윤 등 촉나라의 명재상들이 살아있었을 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저들이 차례로 죽자 유선과 콤비가 돼 촉나라를 '해먹었다'.
이때의 촉나라를 보면 과거의 MBC가 떠오른다.
정확히 말하면 이명박 대통령 시기의 MBC이다. 특히 도드라진 시기가 2010년 3월부터 2013년 3월까지 3년 동안의 김재철 사장 때이다.
김재철 전 MBC 사장이 MBC의 망조를 만든 책임은 논란의 여지 없이 현재 법의 심판 대상에 있다. 재판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혐의까지는 밝혀진 상황이다. 김재철 전 사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함께 'MBC 장악' 실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있다. 앞서 검찰은 두 사람에게 똑같이 징역 4년 및 자격정지 3년을 구형했다.
두 사람은 국정원으로부터 'MBC 정상화 문건'을 받아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오른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을 막은 혐의, 또 2011년 MBC 'PD수첩'의 PD들을 제작에 관여할 수 없는 부서로 인사 조치하는 등 방송 제작을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두 사람에 대한 재판은 아직 1심 선고도 나오지 않은 채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김재철 전 사장과 세트로 언급되는 인물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이다. 김재철 사장 시기에 MBC 홍보국장, 대변인, 기획조정본부장 등을 맡았다. 맡은 직함 및 당시 일으킨 논란들을 살펴보면, 김재철 사장의 입이었다. 유선의 입 황호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진숙 전 사장은 최근 자유한국당에 영입돼 주목 받고 있다. 그러면서 김재철 사장 시기의 행적 및 그에 대한 평가가 여러 언론 보도에서 재차 다뤄지고 있다.
지난 11월 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진숙 전 사장에게 "왜 갑자기 MB 시절, 낙하산 김재철 사장 시절에 홍보국장으로 가서 사측 편에 서고 김재철 사장을 그렇게도 지키고 후배들은 탄압했는가, 유배 보냈는가. 왜 노조를 못살게 했는가"라는 MBC 구성원들의 질문이 전달됐다. 이에 대해 이진숙 전 사장은 "편을 갈라서 하는 질문"이라고 지적하며 "그런 정치를 가장 바꾸고 싶다"고 화제를 돌렸다. 이어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 어떤 코멘트를 하면 또 거기에 대해 뭔가 반응이 나오고. 그러면 결국 싸움을 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어진 해명 요구에 이진숙 전 사장은 "해명할 문제가 아니라 회사 일을 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루 앞서 지난 10월 31일 자유한국당이 개최한 '제1차 영입인재 환영식'에서도 이진숙 전 사장은 비슷한 태도를 보인 바 있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취재진이 그가 김재철 다음 김장겸 사장 시절 보도본부장을 맡았을 때의 세월호 참사 보도 관련 은폐 및 축소 책임, 이후 세월호 특조위 출석 요구 불응 및 임의동행명령 거부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자 "오늘 자리는 그런 쪽 이슈가 부각되는 게 맞지 않다"고 답을 피했다.
이어 MBC 재직 당시 노조 탄압 논란에 대해서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논란이란 서 있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과거에 대해 질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이 상식이 더 살아 있는 사회가 될 지 고민도 많이 듣고, 어떻게 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면 더 좋은 결과로 보답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런 달변(?)은 앞서 김재철 사장 시절에도 구사된 바 있어 익숙하다.
아울러 황호와 닮은 점은 주변 동료들을 내쫓은 것이다. 이진숙 전 사장은 최근 암으로 투병하다 사망한 이용마 기자와 최승호 PD(현 MBC 사장)를 비롯한 동료들의 김재철 사장 시절 해고에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어 대전MBC 사장 시절에도 일부 '껄끄러운' 기자들을 편성, 사업 등 비취재 부서로 보냈다는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나라가 망하자 위나라(또는 위나라가 망한 다음 진나라)에 안착한(연의가 아닌 정사 기준) 유선·황호와 닮은 모습도 최근 자유한국당에서 살펴볼 수 있다. 지난 여름 김재철 전 사장이 언론특보로 임명됐고, 가을에는 이진숙 전 사장이 내년 총선용으로 영입됐다.
지금까지야 촉나라의 유선과 황호처럼 MBC의 망조를 만든 콤비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다만 촉나라와 달리 MBC는 망하진 않았다),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들 하는 사람이란 때론 용케도 변하기도 하는 것이고, 그래서 두 사람이 향후 자유한국당에서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지, 최근 언론에 했던 말대로 '어떻게 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봐 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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