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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정홍래(1720~?) '욱해창응'

비단에 채색, 118.2×60.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비단에 채색, 118.2×60.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영조시대에 활동한 화원화가 정홍래의 작품으로 전하는 그림이다. 정홍래는 매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는데 이 '욱해창응(旭海蒼鷹)'과 비슷한 그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2점 더 있고, 간송미술관에도 '해응관일(海鷹觀日)'이라는 제목으로 1점 소장되어 있다. 본(本)이 있어서 되풀이 그려진 수요가 많은 그림이었던 것이다. 모두 값비싼 화견(畵絹)의 비단 바탕인데다 규모도 커서 왕실을 비롯한 최상류층이 수요처였을 것이다. 붉은 색과 청록색, 갈색과 흰색 등 짙은 채색의 화려함, 섬세하고 치밀한 붓질의 정교함, 매의 깃털과 파도 묘사에서 보이는 도식화된 정연함과 규칙성이 주는 정돈된 맛 등이 특징이어서 장식성과 사실성이 적절히 조합된 화원화풍의 세련미를 잘 보여준다.

솟아오르는 해를 배경으로 바다 가운데 솟은 바위에 앉아 있는 매를 그린 이 그림의 쓸모는 삿된 것이 범접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벽사(辟邪)의 용도이다. 매는 해안가 절벽에 서식하는 우리나라 텃새여서 바다의 일출과 잘 어울린다. 세시풍습의 그림으로 세화(歲畵)가 있었다. 세화는 새해를 맞이하며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한 해 동안 행운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고급한 감상화도 있었고, 부적처럼 문에 붙이는 일회용 문배(門排), 문화(門畵)로도 그려졌다. 중국에서는 연화(年畵)라고 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지금도 인쇄로 된 장군 그림 등 연화를 정초에 문에 붙인다.

매는 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사나운 새임에도 죽은 고기를 먹지 않고, 새끼 밴 것을 잡지 않는다 하여 영물(靈物)로 여겨지며 한국인에게 경외와 사랑을 받았다. 높이 떠 있다 날쌔게 낙하해 조류와 들쥐, 토끼 등을 사냥하는 것을 보며 매가 인생사의 삼재팔난(三災八難) 또한 그렇게 낚아채기를 바랐던 것이다. 매는 부적에도 애용되었는데 부적에서는 몸통 하나에 머리가 셋인 삼두매로 그린다. 삼재가 든 해에는 이 삼재부(三災符)를 집 기둥이나 문에 붙이기도 하고 몸에 지니기도 했다.

그림과 풍속으로까지 매가 스며든 것은 낯설지 않으면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 같다. 유능한 사냥꾼인 매는 몸집이 작아 거추장스럽지 않았고 길들일 수 있어서 삼국시대이전부터 사냥에 활용되었다. 매사냥은 고급 스포츠였다. 길들인 매를 어깨에 앉히고 산과 들로 말을 달리며 토끼를 잡고 꿩을 사냥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신난다. 매와 연관되는 말도 많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치미와 보라매, 송골매, 산지니, 수지니, 수알치, 매받이 등 순 우리말은 그만큼 매와 함께한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려준다. 문(文)보다는 매 사냥을 즐긴 무(武) 성향의 소장자들에게 매 그림 인기가 더 높았을 것 같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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