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년은 무자년이다. 무자년은 '쥐'년이라고 한다. 도대체 쥐를 해에다 부치는 것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쥐는 인류 생활상 거의 대부분이 유해하며~작년에 북조선 일대에 창궐하여 38선을 넘어 남조선에 침입한 흑사병의 공포는 기억에 생생하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8년 1월 1일 자)
1948년은 올해처럼 쥐띠 해였다. 새해 첫날 '인류의 후계자 쥐'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12가지 띠 동물의 첫 번째인 쥐. 인류의 후계자라고 하면서도 덕담 한마디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제강점에서 해방되어 3년이 되었지만 민생고는 여전했다. 게다가 수시로 전염병이 돌았다. 전염병을 옮기는 매개 중 하나가 쥐였다. 그런 마당에 쥐띠 해라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해방 이듬해에 번진 콜레라의 후유증이 그대로인데 이내 흑사병 공포에 휩싸였다. 흑사병은 쥐에 붙어사는 쥐벼룩이 옮기는 페스트균이 원인이었다. 전염되면 살이 썩어서 검게 된다고 흑사병으로 불렸다. 이미 중세 유럽에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던 흑사병이 북조선 일대에 번졌다고 하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38선 인근의 양양 등에서는 실제로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러니 흑사병을 옮기는 쥐가 원수처럼 여겨졌다. 쥐 가죽으로 추위를 막고 쥐 수염으로 붓을 만들어 썼다는 선조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민망했다. 새끼를 많이 낳고 쥐구멍 안에 먹거리를 확보해 둔다고 다산이나 물질적 풍요로 연결 지어 말하는 것도 꺼림직했다.
병균을 퍼뜨리는 쥐는 씨를 말려야 하는 박멸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쥐잡기가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하루 끼니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쥐잡기는 그야말로 사치에 가까웠다. 오죽했으면 해방 직후 구서(驅鼠) 주간을 정해 쥐 한 마리를 잡아오면 5원씩 현금이나 물품으로 교환해 주겠다고 했겠나. 구서는 쥐를 잡아 없앤다는 뜻이다.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는 식량이 부족한 시대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구호였다. 전염병이 아니더라도 쌀을 축내는 쥐를 그냥 둘 수 없었다. 6·25전쟁이 끝난 가을에 경상북도는 쥐 170만 마리를 잡았다고 발표했다. 숫자를 어떻게 세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쥐잡기는 큰 뉴스였다. 쥐약을 놓는 시간까지 당국에서 정해줬다. 쥐를 잡은 증거로 쥐꼬리를 학교에 들고 가는 일도 벌어졌다. 애완 쥐를 키우거나 인간의 유전자와 닮은 쥐가 주는 의학적 혜택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경자년 쥐띠 해의 첫 달도 절반이 흘렀다. 다만 과거에 띠가 바뀌는 기준으로 삼았다는 입춘은 스무날 남짓 남았다. 올해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수시로 쥐 소탕을 벌일 게 뻔하다. 쥐들은 의심할지 모른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분풀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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