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추어탕(대구 남구 이천동 고미술품거리)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60세 이상 할머니들이다. 미꾸라지 손질부터 채소 다듬기, 추어탕 끓이기, 서빙까지 모든 일을 어르신들이 직접한다. 이천추어탕집을 이끌고 있는 이석태(74) 반장은 "일을 하며 용돈 벌이도 하고 여러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생활의 활력을 얻고 있다"며 "일도 보람되고 자부심도 있고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 손맛나는 경상도식 추어탕
이천추어탕이 생긴 것은 2014년이다. 대구시 남구 관내 어르신 일자리 창출을 담당하고 있는 남구시니어클럽이 '시장형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가게를 만들고 어르신들을 고용하면서 시작됐다. 6년째인 지금은 주변은 물론 타지역까지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점심 시간이면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다.
식당에 들어서면 주방 입구에 '100세까지의 팔팔한 삶을 생각하며, 음식을 정성껏 만들겠습니다'란 표어가 눈길을 끈다. 이곳에 근무하는 어르신은 모두 12명, 6명씩 교대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한다. 근무시간은 점심만 영업하기 때문에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2시30분까지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오전 9시 전에 대부분 출근한다. 이석태 반장은 "오전 11시쯤이면 아침 겸 점심을 드시러 오는 손님이 있어 미리 준비해놓기 위해 일찍 나온다"면서 "나이 드신 분들이라 아침 잠이 없어 모두 일찍 출근한다"며 활짝 웃었다.
6명 중 4명은 주방을, 2명은 서빙과 계산을 한다. 이 반장과 김점식(72), 오갑숙( 74), 김영조(69 ) 어르신이 주방을 맡고, 이을태(66), 민태영(63) 어르신이 서방과 카운트를 담당하고 있다. 이 반장은 이천추어탕의 든든한 리더다. 9년간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이천추어탕이 자리 잡는 데 큰 몫을 했다. 이 반장은 열정적이고 친절하게 손님을 응대하고, 조원들의 업무 분장과 교육을 한다.
일한 지 3년 됐다는 김영조 어르신은 이 반장과 함께 추어탕을 끓인다. 오갑숙 어르신은 부침개를 부쳐내고, 김점식 어르신은 겉절을 담당한다. 웃는 얼굴이 예쁜 이을태(66) 어르신은 서빙, 막내 민태영(63) 어르신은 서빙과 카운트를 담당하고 있다. 이 반장은 "힘든 일도 좋은 일도 함께해오다보니 말하지 않아도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했다.
이곳 메뉴는 추어탕과 해물파전, 촌두부 등 3가지이지만 손님들은 주로 추어탕을 찾는다. 전형적인 경상도식이다. 미꾸라지를 푹 삶은 후 체에 밭쳐 일일이 손으로 훑어 뼈를 걸러 낸 뒤 손질한 배추를 넣고 끓인다. 배추는 청방배추다. 이 반장은"청방배추는 크지 않고 적당한 수분과 깊은 단맛을 지니고 있어 정갈한 맛이 나 이 배추만을 사용한다"고 했다.
특별한 맛을 내기 위해 별스럽게 솜씨를 부리지 않는다. 오랜 경험과 노하우로 손은 저울이 되고 계량스푼이 되어 특별한 비법을 만들어낸다. 맑은 국물은 시원하고 담백하다.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이 반장은 "모두 할머니의 정성과 손맛이다. 시골 엄마가 끓여준 어릴 때 맛본 것 같은 맛이다. 그래서 포장해가는 손님이 많다"고 했다.
상차림도 깔끔하다. 국과 깍두기, 겉절이, 콩자반, 버섯양파볶음, 부침개, 찧은 마늘, 썬 풋고추, 재피가루가 전부다.
◆"출근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
어르신들은 이구동성으로 출근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이석태 반장은 "집에 있으면 잘 씻지도 않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있는 경우가 많은데 출근하니 화장도 하고 옷매무새에도 신경쓰는 등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조 어르신은 "몸은 고달파도 힘든 줄 모르고 일한다. 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했고, 김점식 어르신은 "허리가 좋지 않아 힘든 것 못 드는데 동료들이 도와준다. 이처럼 형님, 아우 하면서 일하다보면 일주일이 금방 간다"고 했다. 오갑숙 어르신은 "자고 일어나 일하러 갈 수 있는 곳이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이을태 어르신은 "손님들이 '맛있다. 잘 먹고 갑니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내달 5일이 월급날인데 그 돈으로 친구들에게 한턱 쏘기로했다"고 활짝 웃었다.
민태영 어르신은 "팀워크가 너무 좋다. 그래서 출근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라고 했다.
김슬기 남구시니어클럽 노인일자리 담당은 "할머니들이라 책임감도 강해 너무 잘하고 있다. 또래 친구들은 집에 있거나 병원을 드나드는데 이곳 어르신들은 활동할 수 있어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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