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동물 바이러스와 인류 역사 - 이성환 교수

이성환(계명대학 일본학전공 교수, 국경연구소장)

총·균·쇠
총·균·쇠
이성환(계명대학교 일본학전공 교수, 국경연구소 소장)
이성환(계명대학교 일본학전공 교수, 국경연구소 소장)

동물 가축화·조밀한 도시생활 결과
유행성 질병은 언제 어디서든 발생

동물성 세균이 전부 발병 원인 아냐
전염병 발원지 국민 경원하면 안 돼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린 젊은 부부가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고민에 빠졌다. 남자 환자에게 감염을 의심할 만한 행동이 없었는지 물었다. 낮은 목소리로 최근 목장에서 양들과 수차례 성교를 가졌다고 했다. 옆에 있던 부인은 남편의 머리를 내려치고 병실을 나갔다. 의사는 원인을 알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균·쇠'(GUNS, GERMS, AND STEEL, 1997)에 나오는 동물과 인간 질병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책에서 그는 인류 역사를 변화시킨 결정적 요인의 하나로 무기, 철과 함께 병균을 들었다.

인플루엔자, 홍역, 페스트 등 전염성 인간 질병의 대부분은 농업을 시작하고 동물을 가축화하면서 발생했다. 동물이 가지고 있던 세균이 진화(변이)하여 인간에게 옮겨왔고, 밀집 생활을 하면서 집단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최근의 중국발 코로나19도 박쥐에서 옮겨왔고 조밀한 도시생활이 집단감염을 유발했다. 전염성 질병은 동물을 가까이하고 조밀한 집단생활을 하는 인류에게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인 것이다.

동물성 세균이 전부 인간의 질병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쳐 극소수만 인간에게 옮겨진다. 이 때문에 동물이 가진 세균의 진화 여하에 따라 인간이 새로운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인간에게 옮겨온 세균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인간에게 기침이나 재채기를 유도하여 새로운 숙주를 찾아가기도 한다. 여기에 대해 인간은 체온을 높여(발열) 세균을 죽이거나, 백혈구 등이 면역체계를 가동해 항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세균에 감염된 인간이 죽으면 숙주가 없어진 세균도 죽게 되는데, 이는 세균이 인간의 몸을 자기 생존에 맞게 개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뜻하지 않은 부작용일 뿐이라고 한다. 세균은 번식을 위해서는 오염된 인간을 더 오래 살려두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최근의 전염병이 독감 치사율보다 낮은 것은 의학의 발달뿐 아니라 번식을 위해 세균들이 진화한 결과인지 모른다.

인간에게 진화한 병균은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찍이 동물 병원체에 노출되어 항체를 가지게 된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갔다. 수렵 채집을 하고 있던 원주민들은 동물 병원체에 노출된 적이 없어 유럽인들에게 묻어온 세균에 대한 면역이나 유전적 저항력이 부족해 몰살을 면하기 어려웠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총보다는 그들이 가져온 세균에 의해 죽임을 당한 숫자가 더 많았다. 유럽인의 '사악한 선물'이었다. 같은 논리로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전투보다는 전쟁 중 발생한 세균에 의한 사망자 수가 훨씬 많았다. 전투력 향상을 위해서는 무기 개발이나 전술보다 질병 예방이 먼저였다. 청일전쟁 중 일본군 사망의 90%는 만주에서의 수인성 전염병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일본은 질병 예방이 부국강병의 지름길이라며 위생에 힘썼다. '깨끗한 일본'은 청일전쟁의 산물이다. 전쟁이 끝나고 귀환하는 선박 687척, 전쟁 종사자 23만 명은 지금 세균의 배양접시가 되어 요코하마항에 격리되어 있는 크루즈선처럼 검역을 마친 후에야 본토 상륙을 허가했다. 러일전쟁 때는 모든 병사에게, 우리에게 위장약으로 잘 알려진 정로환(征露丸)을 의무적으로 복용하게 했다.

정로환은 장티푸스, 소독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러시아를 정벌한다는 의미의 정로(征露)는 당시 일본의 유행어였다. 그 후 정로환은 러시아를 이긴 만병통치약으로 국민 상비약이 되었다. 2차대전 후 정벌의 의미를 없앤 정(正)로환으로 표기를 바꾸었으나, 지금도 해외 파견 자위대의 상비약으로 사용한다.

유행성 질병은 농경생활, 조밀한 도시생활 그리고 세계화의 필연적 결과로 어디서든 발생하고 감염될 수 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는 질병명에 발원지명을 쓰지 않는다. 생쥐의 오줌에서 나온 바이러스가 공기로 전파되는 유행성출혈열(E.H.F.)은 한국형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코로나19는 중국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필자가 있는 학교도 곧 1천 명 이상의 중국 유학생들이 돌아온다. 그들을 코로나19의 발원지 국민이라고 경원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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