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거꾸로 가는 이니시계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기자에게 쇄도하던 부탁이 몇 달 전부터 갑자기 사라졌다. 부탁 내용은 "청와대 출입이니 이니시계(문재인 대통령 시계·'이니'는 지지자들이 문 대통령을 부르는 별명으로 문재'인이'를 소리대로 적은 것) 좀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부탁이 너무 잦아 친구들이 전화오면 투박스럽게 "내가 시계방 하나? 시계공장 돌리나?"라고 핀잔을 줬다. 연세가 드신 분들이 연락을 해오면 "저도 그 시계 갖고 있지 않고(기자는 청와대 출입기자단 전체에게 이 시계를 줄 때 받았다가 문 대통령을 너무 좋아한다는 친구에게 줬다) 구할 방법이 없네요"라는 요지로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이니시계에 대한 관심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고 시계를 구할 도리가 없는 기자에게 이니시계 '주문'은 오랜 골칫거리였다. 누가 내놨는지는 몰라도 제작비의 몇 배에 이르는 가격이 매겨져 있는 상태로 이니시계 구매자를 찾는 내용도 온라인상에서 자주 보일 만큼 인기는 대단했다.

이니시계 인기는 취임 초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던 문 대통령의 '개인기' 덕분이기도 했지만 이 시계의 상징적 의미도 한몫했다.

청와대 설명에 따르면 이니시계는 탈권위를 상징했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을 먼저 생각한다는 문 대통령의 민본주의(民本主義) 정치철학이 이니시계에 녹아 있다고 청와대는 강조했다. 그 전까지 시계의 대통령 표장을 권위적인 색깔이라 받아들여지는 황금색으로 하던 관행에서 탈피, 로즈골드색도 채용했다.

하지만 취임 초 이니시계에 새겨 놓은 문재인 정부의 굳센 다짐은 사그라든 이니시계 인기가 보여주듯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있다. 야당은 물론, 전문가들의 의견도 무시한 채 취임 초부터 독불장군처럼 밀어붙인 소득주도성장·근로시간 단축은 경제인들의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에 불을 지폈다. 결국 지난해 40, 50대 비자발적 퇴직자가 최근 5년 새 최대치인 48만여 명을 기록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일자리정부라 칭해온 정부에서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법무부 장관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앉히는 과정에서 각종 비리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내치지 않았다. 표창장 위조 등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는 수많은 논란이 불거졌는데도 문 대통령은 시종일관 조 전 장관을 두둔하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표적 진보 지식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문 정부에 대한 강력한 저격수로 전면 등장하는 아이러니까지 만들었다.

올 들어서도 문 대통령은 지난달 2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재가함으로써 취임 이후 인사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장관 임명 기록을 23번째로 늘렸다. 역대급 불통정권, 사상 초유의 야당 무시라는 비판에 직면했지만 문재인 청와대에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일 뿐이었다.

문 정부 탄생의 주역인 민주당은 보수정당이 따라오기 힘들었던 그들의 주특기마저 잃어버리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본원적 가치인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민주당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야당으로서 맹렬히 싸웠던 정당이었다. 하지만 최근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 칼럼 파문에서 드러났듯이 민주당은 그들을 비판하는 언론 자유를 짓밟으며 국민들 위에 올라서 "그 입 다물라"를 외쳤다. 문재인·더불어민주당 정부의 상징인 이니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대통령 임기가 아직도 2년 넘게 남았다. "거꾸로 가는 이니시계를 고쳐줄 시계 수리 명장들은 언제쯤 온단 말인가?" "4월 15일인가?" 이니시계를 부탁하던 사람들이 요즘은 이 질문을 기자에게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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