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성장에 대한 믿음

김수용 서부지역본부장
김수용 서부지역본부장

코로나19로 중국 내 사망자가 1천 명 단위를 넘어섰고 도시를 봉쇄한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만 해도 '중국이라서 그렇지. 이러다 말겠지'라고 여겼다. 사스와 메르스, 신종 플루의 공포는 뇌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국내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엄격한 검역으로 확산세는 없을 듯 보였다. 하지만 신천지 때문에 엉뚱한 곳에서 뇌관이 터졌다. 대구경북은 기피 단어가 됐고 별 생각없이 봉쇄를 언급할 수 있는 도시가 됐으며, 마치 전염병 소굴처럼 대놓고 욕하는 몰지각한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겨낼 것이다. 도시가 멈춰 서고 사람이 죽어나가며 의료 물자가 부족하다는 눈물겨운 하소연을 정치적 프레임 속에 집어넣는 일부 뇌 없는 정치인들이 속을 뒤집어 놓지만, 투표를 제대로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말의 토악질을 해대는 일부 인사들이 가슴을 치게 만들지만 우리는 결국 해낼 것이다. 식료품 사재기 한 번 없이, 수백m 늘어선 마스크 구매 행렬에도 새치기나 욕지거리 한 번 없이, 행여 피해를 줄까 봐 답답한 집에 갇혀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성숙한 대구경북민이기에 이겨낼 것이다.

걱정은 경제다.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사람 간 접촉을 막고, 지역 간 거리를 두는 차원을 넘어서 국경을 막는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전염병은 격리가 해결책이지만 경제는 격리가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중세 흑사병이나 1918년 스페인독감 때의 팬데믹과는 전혀 다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국경이 막힌다는 것은 교역 중단을 뜻한다. 물품을 생산해도 팔 곳이 없어져 공장이 문을 닫고,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나며 경제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11년간의 파티는 끝났다'는 외신을 접하면 답답하다. 그렇게 만든 과정이야 어찌됐건 그들은 나름의 호황을 누렸다는 뜻인데 우린 어떠한가. 22조원을 들여서 4대강 사업을 추진했건만, 빚을 내서 집을 샀건만 호황을 누려본 기억은 없다. 바뀐 정권은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 소득주도성장을 하겠다고 야심차게 외쳤지만 체감 경기는 바닥이다. 경제는 가라앉은 내수 탓에 숨을 헐떡이면서도 그나마 수출로 간신히 버텼는데,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저성장의 늪에 빠져 얼마나 더 허우적댈지 아찔하다.

재난기본소득 지급 논의도 한창 벌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기본소득' 도입의 필요성은 대두될 것이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경제적 능력을 잃은 이들에게 소비 주체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다만 그것이 궁극적 해결책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핵심은 성장에 대한 믿음이다. 앞으로 파이를 키울 자신이 없으니, 즉 국민을 더 부유하게 만들 자신이 없으니 지금 가진 파이를 나눠 먹자는 정책은 불안하다. 성장 한계와 불평등 확산으로 무작정 파이를 키울 수도, 키운 파이를 공평하게 나눌 수 없음도 잘 안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이 나서 대한민국이 먹고살 파이를 키워보겠다는 것과 파이 크기가 뻔하니 이거라도 나눠 먹자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성장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국민들은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당장 표를 더 얻겠다는 근시안적 정책이 아니라 나눠 먹을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대구경북민이 바이러스와의 힘겨운 싸움을 치러낼 수 있었던 이유는 위기 극복에 대한 확고한 믿음 덕분이었다. 닥쳐올 글로벌 경제위기에서도 이런 믿음을 주는 것이 백신을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총선을 앞두고 온갖 말잔치가 난무하지만 성장에 대한 믿음을 주는 정당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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