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非TK가 주도한 쪽박 공천

미래통합당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 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 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환 정치부 차장
이창환 정치부 차장

대구경북(TK)은 낙하산 공천에 익숙하다. 보수 정당의 오랜 텃밭인 탓에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된다는 자조와 체념은 TK의 정치적 정체성이 됐다. 국회의원 선거뿐만 아니다. 지방선거에서도 국회의원들은 광역·기초의원들을 막무가내로 내리꽂는다. 욕을 하면서도 막상 투표장에 가면 손이 보수 정당으로 향한다.

낙하산 공천이라도 나름 기준은 있었다. 대표적인 낙하산 공천으로 평가되는 4년 전 20대 총선을 되돌아보자. 2016년 1월 20일 남구의 한 식당에 모인 대구 진박 후보 6명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 이재만 전 동구청장. 장관급 2명, 청와대 수석 2명, 지역의 대표 금융인, 기초단체장 등이었다. 서울 TK 4명에 토박이 2명이다. 결과는 3명이 당선돼 성공률이 절반에 불과했다. 이 공천을 주도한 그룹도 이한구·최경환 의원 등 TK 출신이었다.

역대 보수 정당에서 TK 낙하산 공천 주도 세력은 TK 출신이었다. TK 그룹이 주도하지 않은 TK 낙하산 공천에는 강하게 반발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틀어쥔 15대 총선이 대표적이다. YS 측근들이 행사한 TK 공천에 낙하산이 적지 않았다. 결과는 대구 13석 중 신한국당 2석, 자유민주연합 8석, 무소속 3석으로 여당의 참패였다. 대구 선거 역사에서 '자민련 돌풍'으로 유명한 선거였다.

비(非)TK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주도한 16대 총선에서도 TK 낙하산 공천이 이뤄졌다. TK 대표 정치인이었던 고(故) 김윤환 전 의원이 탈락한 선거였다. 그마나 공천 주도 그룹은 15대 총선을 반면교사로 삼을 만큼 영리했다. 김 전 의원을 날리면서 서울 TK를 내리꽂는 대신 경북도의원으로 젊고 유망했던 김성조 전 의원을 전격 발탁했다. 지역의 젊은 인재를 발굴해 반발 여론을 최대한 피하면서 개혁 공천으로 포장했다.

이번 공천은 비TK인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와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주도했다. 공관위에 TK 인사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물갈이에만 초점을 두고 대안 마련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다. 현역 의원을 솎아낸 빈자리를 황 대표와 김 위원장이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장관급도, 청와대 수석급도, 토종 TK도 아닌 변호사를 지냈고, 우파 사회단체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해당 인물들을 무시하는 게 결코 아니다. 역대 낙하산 공천 인사와 비교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김형오 공관위원장은 누구인가. 부산에서 보수 정당 간판으로 5선 국회의원을 달았고,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부산에서는 큰 정치인으로 대접받는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을 5명 배출한 TK 입장에서는 그냥 중진 의원일 뿐이다. 김 위원장급 정도의 정치인은 TK에서 여러 명 나왔다. TK를 모르면 잘 들어야 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역대 최고의 TK 공천은 17대 총선으로 꼽는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었고, 김문수 공관위원장이 주도했다. 주호영(44), 주성영(46), 이명규(48), 최경환(49) 등 40대 신진 인사를 대거 공천했다. 1년 뒤 비례대표이던 유승민(47) 의원도 대구로 자리를 옮겼다. 개혁 공천이면서 혁신 공천이었다.

비TK가 주도한 이번 공천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대박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쪽박이었다. 정치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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