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찬란한 예술의 기억] 예술로 행동한 대구의 예술가들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지난 일요일, 서울에서 열린 4·19혁명 60주년 기념식에서 '상록수 2020' 뮤직 비디오가 공개됐다.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전 세계 의료진에게 헌정한다'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된 이 뮤직 비디오에는 강산에, 이은미, 홍진영 등 30여 명의 가수가 참여했다. 영상 후반부에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의 '보건의료인들의 헌신과 방역에 협조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음성이 깜짝 등장해 더 화제를 모았다.

국가보훈처는 "이 영상이 60년 전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했던 그날처럼 모든 국민이 함께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밝혔다. 굳이 이런 설명이 없었더라도 어떤 연설문보다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 노래 한 곡이 더 큰 메시지와 감동을 전해 준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영상이었다.

지금은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줄어들고 있어 희망이라도 보이지만,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대구의 상황은 심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지만, 문화예술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예술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힘들어했다. 생존의 위협 앞에서 문화예술의 가치를 설명하거나 주장할 틈조차도 없어 더 절망스러웠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던 그때, 대구의 예술인들이 조용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뮤지컬 배우, 인디밴드, 성악가, 연주자 등 60여 명이 참여해 뮤직비디오 '대구 문화예술인 하나 되어 어게인'을 제작‧공개한 것이다. 영상 속 예술인들은 텅 빈 달서구 코오롱야외음악당, 수성구 대구스타디움,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등에서 힘차게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봄을 맞아 각종 공연이 활발하게 진행됐을 장소다. 프리랜서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재능기부로 출연하고 제작해 이 도시에 울려 퍼진 '하나 되어'는 예술이 가진 '치유'와 '희망'의 힘을 보여줬다.

시간을 거슬러 4·19혁명이 일어났던 1960년 대구로 돌아가 보자. 1960년 2월, 3·15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장기 집권을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던 자유당 정권은, 야당의 유세장에 청중이 몰리는 것을 방해하려 대구 시내 8개 공립학교에 일요일에 등교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일요 등교 방침에 항의하던 학생들은 2월 27일 결의문을 작성하고 28일, 가두시위를 시작한다. 학생들의 용기에 힘을 얻은 대구 지역 언론은 '2·28민주운동'을 크게 보도했고 전국적인 학생운동으로 이어졌다. 학생들에 의해 시작된 2·28민주운동은 3·15의거,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같은 시기 매일 저녁 향촌동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예술과 사회를 이야기하던 대구의 예술인들도 어떻게든 행동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당시 대구관현악단(대구시향의 전신)을 이끌던 이기홍 지휘자를 필두로 각 분야 예술인들이 모였다. 6·25전쟁 직후부터 시작한 교향악 운동을 이어 대구시립교향악단 창단을 위해 노력하던 때였다. 이들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4·19혁명 기념 음악회를 기획했다.

대구관현악단은 그해 7월 19일 3회에 걸쳐 계성학교 대강당에서 4·19 기념 음악회를 열었다. 준비 기간 동안 대구의 시인들이 시를 짓고 음악인들이 곡을 붙였다. 참가 시인은 신동집 전상렬 박훈산 김장수 서정희 이민영 등이며, 이들의 시에 하대응 안종배 박기환 백남영 이기홍이 곡을 붙이고 신경진 남정희 백남영 신경흥이 노래했다. 신동집의 '빛나던 사월', 전상렬의 '하늘이 안다', 박훈산의 '민주전사', 김장수의 '아- 4·19', 서정희의 '사월은 진달래', 이민영의 '사월의 꽃' 등이 이날 연주된 곡들이다.

이 내용은 이기홍 지휘자가 보관하고 있던 4·19 기념 음악회 프로그램을 음악문헌학자 손태룡 선생이 발굴하면서 알려졌다. 특이한 것은 이날 음악회를 녹음한 SP음반이 제작됐다는 점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시인이 보관하고 있던 음반 한 장을 서울의 수집가가 소장하게 되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그런데 이기홍 선생이 돌아가신 후 공연 프로그램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SP음반도 이미 그 수집가의 손을 떠나 찾기 힘들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금은 손태룡 선생이 찍어둔 프로그램과 음반 사진이 4·19 기념 음악회의 기록을 이야기해 주는 유일한 자료다. 소중한 유물들을 발굴한 손태룡 선생 덕분에, 우리는 예술로 행동한 대구 예술가들의 정신을 기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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