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믿는 것은 위험하다. 수상한 친절에는 의도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꿈을 짓밟는 것을 좋아해'라는 That's Life의 가사처럼 분란으로부터 존재 가치를 찾는 이들도 있다. 믿어도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의심부터 하라고 가르쳐야 할 마당이다. OECD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약 27%만이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다고 답했다. 불신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직과 신뢰라는 가르침은 이제 교과서적이고 이상적인 표어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믿는 것은 위험하지만 믿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다. 미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신뢰의 차이이며, 저(低)신뢰 국가는 사회적 비용이 급격하게 커져서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신사회에서는 짝퉁이 아닌지 매번 확인해야 하고 누가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본연의 일에 집중할 수 없다. 그 결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신뢰가 상실된 조직은 실수의 원인을 찾아내 개선하기보다는 실수한 사람을 색출하는 데 관심이 많다. 책임질까 두렵고 정보를 숨길수록 권력이 커지기 때문에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
신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기에 이를 구축하고 파괴하는 주체 또한 사람이다. 그 믿음은 상대방의 능력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는 믿음일 수도 있다. 믿음은 사회적 자본이기 때문에 사용한다고 해서 마모되지 않는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아도 마음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말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나 호감이 없기 때문이다. 지속적이고 성공적인 협력을 위해 필요한 신뢰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자존감을 키울 필요가 있다. 철학자 오노라 오닐은 "신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신뢰받을 만한 자격을 높이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고 했다. 신뢰받을 자격도 없으면서 신뢰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신뢰라는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영화 '크래쉬'(Crash)에서 흑인 여성 크리스틴은 백인 경찰의 불심검문에서 과한 몸수색을 당하고 심한 모욕감을 느낀다. 그 후 그녀는 자동차 전복사고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하지만 그 경찰에게 구조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 에피소드는 인종차별이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도 볼 수 있지만, 신뢰를 얻기도 힘들지만 한 번 잃으면 다시 되찾기는 더 힘들다는 방증일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하는 "관리자가 신뢰를 얻지 못하면 아랫사람을 괴롭힌다고 의심받고, 아랫사람이 신뢰를 얻지 못한 채 바른 소리를 하면 윗사람은 자기를 비판하는 줄 의심한다"고 했다. 사사건건 통제하고 의심하는 행동은 부하 직원으로 하여금 감시를 피하는 요령만 터득하게 한다. 상사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믿음을 저버릴 때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윗사람이 믿어주면 인정 욕구와 책임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리더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샘 워커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진실성과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이 위기의 국면에서 사람들을 믿게 만드는 힘이라고 분석했다. 믿을 수 없는 리더의 곁에 머무를 국민은 없다. 당신이 믿을 만한 행동을 하면 신뢰하겠다는 조건부 신뢰가 아니라 먼저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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