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 반궁자성(反躬自省)

임종대
임종대

잘못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 고친다는 뜻이다. 내 허물을 스스로 찾아 바르게 고친다는 의미로 《익재집益齋集》, 《익재난고益齋亂藁》에 전한다.

고려 25대 충열왕(忠熱王1725~131) 때 이제현(李齊賢1287~1367)은 1301년에 성균관시에 1등으로 합격하였다. 1308년 22세로 문예춘추관에 발탁된 후 4번이나 재상을 지낸 훌륭한 정치가였다. 익재(益齋) 제현은 어려서부터 문장이 호방하고 단아해 옥처럼 다듬은 듯하여 동량(棟梁)이 될 것이라 하였다. 제현은 자가 중사(仲思)로 중심에 바로 서 자신을 경계할 때면 이렇게 말했다.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하고, 돈을 움켜쥐려는 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슴만 쫓느라 산이 보이지 않고, 돈만을 움켜쥐느라 사람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익재는 바로 여기서 자신을 일깨우는 생각의 폭을 짚어 보게 된다.

"후미진 골짜기에 못이 있고 그늘진 곳에 누각이 있는데, 아무도 그 누각에 사람이 있는 것을 모른다. 골짜기를 벗어나 올라서면 연못도 보이고 사람도 보일 텐데, 조정이나 시장에 마음이 팔려 명예와 돈에 눈이 멀면 연못과 누각의 사람을 보지 못한다. 하늘이 숨기고 땅이 가렸다고 말하는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고(反躬) 골짜기를 올라서는 지혜(自省)를 가져야 한다."

1314년 충선왕을 따라 원(元)나라에 갔다가 그곳 수도 연경(燕京)에서 고려인의 뛰어난 재능을 드러내 유명한 조맹부(趙孟頫) 등과 교류하였다. 왕을 모시고 공도 세웠지만 중원에서 고려를 바라보며 크고 작은 나라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제현은 충목왕이 즉위하자 판삼사사(判三事司)에 임명되어 새로운 정책을 펴면서 개혁안도 제시하였다. 그는 백성을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가를 옛 중국 고사를 들어 이렇게 피력하였다.

"우(禹)왕은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자기가 그를 빠지게 한 것 같이 여기고, 직(稷)은 굶주린 사람을 보면 자기가 그를 굶주리게 한 것 같이 여겼다. 하늘이 큰 인물에게 소임을 맡길 때는 이 세상을 구제하라는 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닌데, 왜 몇 걸음 밖에 굽어보지 못한단 말인가?"

익재는 잘못은 백성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굽어보는 정치인들에게 있다는 반궁자성(反躬自省)을 일깨워주고 있다. 제현은 스스로 학문이 빈약하여 도(道)를 깨닫는 것이 더딘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말하였다. 나이 들어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후회할 텐데 더 늦기 전에 배울 것을 당부하면서, 그는 성심을 다하여 백성을 섬기고 받들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의 재주는 배(舟)의 노(櫓)와 같고, 운명이란 그 배에 불어오는 순풍(順風)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노가 있고 돛단배에 순풍이 불어오더라도 그 배를 조정하는 사람이 그만한 인물이 아니면 어찌 만석(萬石)의 무거운 짐을 싣고 만 리 먼 길을 가 닿을 수 있겠는가?"

결국 운용하는 사람의 뜻이 높고 원대하지 못하면 험한 파도를 어떻게 헤쳐나가겠는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고려의 익재 선인에게 새삼 머리를 숙인다.
임종대 (사)효창원 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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