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팩에 근육질로 다져진 몸매, 불타는 듯 강렬한 눈빛, 화려하고 역동적인 액션은 금세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조국을 위해 앞 뒤 보지 않고 직진하는 스파르타인들의 근성에 강한 애국심마저 느끼게 된다. 특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무릎 꿇지 않고 마지막까지 당당히 싸우다 최후를 맞는 스파르타 전사 300명의 희생은 눈물겹다. 이상 영화 '300'의 이야기이다.
공교롭게도 스파르타 전사 300명은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와 같다.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기 전, 국민을 위한 그들의 결의와 맹세는 스파르타 삼백 전사들 못지 않다. 그러나 막상 국회의원이 되어 4년이 흐르면 초선이어서 당의 거수기 역할 밖에 할 수 없었으니 재선 의원으로 만들어 달라고 읍소한다. 재선 뒤, '한 게 뭐있냐'라는 비판에는 3선이 되어 상임위원장이 되면 막대한 예산을 가져올 수 있다며 또 한 번 읍소한다. 심지어 중진이 되어 계파싸움에 휘말릴 때면 대권 대망론을 내세우며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는 마술을 부린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여 법률을 제정하고 예산을 심의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공천받기 위해서는 당론에 묶여있어야 하며, 핵심 지지층과 지역 단체장 등 정치적 경쟁자, 그리고 지역 유지들의 눈치를 봐야 기에 지역숙원사업과 예산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기에는 인프라 예산만큼 좋은 것은 없다. 인프라 건설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장밋빛 전망을 보여주지만 낙수효과 등 효과성 측면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또, 나날이 조세저항이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시민단체의 눈은 피할 수 없으며 지역구 쪽지예산이라도 가져올 때면 언론의 질타를 맞기도 한다. 기껏 가져온 예산은 과도한 지방비 매칭으로 차라리 국비를 따오지 말라는 볼멘소리와 지역현실과 맞지 않는 특정 R&D예산에 대한 반갑지 않는 목소리를 들을 때면 국회의원 자리가 마냥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재개발, 재건축의 호재는 지역 국회의원들을 가장 존재감 있게 만드는 공약이지만 필연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낳아 임대상인들에게는 악재가 되며 그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타 지역으로 떠나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속출한다. 또, 좋은 학군에, 새 아파트에 살고 싶은 서민들의 소망은 '거액의 대출'이라는 요단강을 건너게 만든다. 그 결과 가계의 가처분 소득은 줄고 소비는 줄일 수밖에 없기에 그 만큼 지역경제는 위축된다. 비싼 아파트에 사는 가난한 서민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도 틀린 얘기만은 아니다.
얼마 전, 우리는 21대 국회의원 300명을 코로나 태풍의 한 가운데서 선출했다. 정당을 떠나 코로나 사태가 주었던 우리 사회의 숙제들은 21대 국회가 풀어야할 숙명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의 위력은 막강했다. 인류의 이동과 교역을 가로막을 만큼 그 위세는 대단했으며 세계화의 후퇴, 보호무역 강화, 빈부격차 심화, 개인주의 성향이 강화될 거라는 예상을 나오게 했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 이후, 자유질서가 가고 '성곽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고 말한 前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의 말은 수긍이 간다. 어쩌면 컨테이너로 상징되는 세계화의 물결이 멈추고, 중요한 생산시설이나 장비를 자국으로 옮기고 빗장을 걸어 잠그는 새로운 '뉴 노멀'의 도래는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태는 분명히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인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는 또 창궐할 수 있기에 이동제한과 자가 격리, 조업중단 등 경제적 셧다운의 가능성은 늘 상존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필연적으로 '직업과 노동의 종말'을 부르는 4차 혁명에 대한 대응책과 수출위주의 우리 경제에 근본적 체질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텅 빈 도로, 승객이 없는 버스, 문 닫은 가게가 즐비한 도시의 모습과 무급휴직이 다반사 되는 현실은 수면 아래에 있던 '기본소득'이라는 어젠다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으며 이번 기회에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시적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게 만들었다.

찬성론자들은 기본소득이 상시적 재난에 대비하고, 복잡한 복지시스템을 단순화해 중복을 막고 '송파 세 모녀'와 같은 복지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본소득이 기존의 각종 보조금, 사회보험, 복지 수당 등을 통폐합시켜 행·재정의 낭비를 제거할 수 있고, 내수경제 활성화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어쩌면 상시적 기본소득제도는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에게 복지 포퓰리즘 공약의 유혹이나 낭비성 지역 인프라 예산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외환위기(1997년)나 금융위기(2008년) 등 국가 재난 후, 공직 등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는 분위기는 확산되었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만연된 공직선호 현상은 다원화된 사회발전을 추진함에 있어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연금제도나 정년보장이 공직선호의 주된 이유라면, 기본소득은 불확실한 미래를 어느 정도 담보하여 창업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주고, 사회적 보호망을 강화시켜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재양성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지식기반산업 등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또한 고도의 압축성장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각인된 부정적 신념 중 하나가 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인데 기본소득은 저소득층의 생활고로 인한 범죄를 줄일 수 있고, 자력갱생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기에 형사정책적 측면에서도 그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의료보험제도를 가지고 있다. 의료보험제도는 상부상조 정신에 입각한 한민족 특유의 '긍휼'이 바탕이 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의 건국이념과는 달리 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민족의 영원한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사상은 어쩌면 기본소득 개념과 가장 부합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도는 많은 장점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재원 문제, 도덕적 해이와 역차별 문제, 각종 연금 등과의 통·폐합 문제 등 많은 난제가 내포되어 있다. 의료보험제도처럼 세계인들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기본소득제도가 21대 국회에서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며 마키아벨리가 남긴 명언을 이 칼럼에 남기고 싶다.
"어떤 정치체제를 지키고 싶으면 필요한 경우에 그 정치체제의 이념에 어긋나는 일도 과감하게 해치울 만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
국가는 국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기본소득제도로 실천해 보면 어떨까? 그 실천적 과제가 21대 국회의원 300명의 용기와 헌신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자유기고가 이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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