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우리 가족 최고의 식사!(신디위 마고나 글, 역자 이해인, 샘터, 2008)

위기를 희망, 아름다움, 전설로 추억할 수 있는 지혜

저녁
저녁

사회적 거리두기로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 집 아이들은 둥지 속 아기새다. 아침, 점심, 저녁 아이들을 거둬 먹여야하는 나는 참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종일 집안에 머문 아이들은 퇴근을 하는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나를 반기는 건지 특별한 저녁 식사를 기대하는지 조금 헷갈리긴 하지만.

저녁 무렵 식구들이 둘러 앉아 밥을 먹을 때면 생각나는 책이 있다. 표지에 요리를 하는 누나 둘레에서 신나하는 모습의 아이들이 그려진 『우리 가족 최고의 식사!(The Best Meal Ever!)』이다.

글쓴이 신디위 마고나(Sindiwe Magona)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코사족의 자치국이었던 트란스케이에서 1943년 태어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학교와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1990년부터 책을 발표해 왔고 UN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2003년 은퇴 후 어린이들을 위한 책을 쓰고 있다. 2006년 이 책을 발표했고 이후 꾸준하게 작품 발표를 하고 있다.

이 책의 배경인 구굴레투 마을에는 인종분리 정책으로 수도인 케이프타운에서 살지 못하고 이주한 흑인들이 살고 있다. 이 마을은 멀리 일하러 간 어른들이 많아 아이들은 이웃, 친척이 서로 돌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책장을 넘기면 쌍둥이가 소파에 누워서 '도대체 밥은 언제 먹느냐'고 기다리고 있고, 누나 시즈위는 호롱불 앞에 고민에 빠져 있다. 이 아이들의 엄마는 편찮으신 할아버지를 돌보러, 아빠는 일하러 바다에 나갔다.

첫째 시즈위, 떼쟁이 룬투, 여동생 린다, 쌍둥이 노씨사와 씨사와 강아지 상고까지 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동생들은 배고프다고 축 늘어져 있거나 떼를 쓴다. 시즈위는 그 순간 주방으로 가면서 저녁을 준비할 테니 동생들에게 밥 먹고 난 후 바로 잘 수 있도록 씻으라고 한다. 숨겨둔 비상 양식이라도 내놓으려는 걸까?

시즈위는 냄비에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한다. 들떠있는 동생들이 욕실에서 나오자 후추와 소금을 뿌린다. 기대에 찬 동생들의 눈망울, 그러나 그 눈망울은 요리가 다 되기 전 감기고 꿈나라로 하나둘 떠난다. 동생들이 모두 잠들자 버너의 불은 아주 낮게 조절되어 있고 냄비에는 김이 올라오지만 시즈위는 버너를 끈 후 먹을 생각도,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음 날, 엄마 친구 마날라 아줌마가 먹을 것을 가득 가져온다. 그리고 돈 봉투도 건넨다. 시즈위는 신나게 아침을 준비했고 동생들은 아침식사를 덮치듯 먹으면서 '최고의 식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즈위는 어제 차리지 못한 저녁 식탁이 '최고의 식사'라고 되뇌인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어른이 된 동생들에게 그날의 저녁 식사에 대한 비밀을 털어 놓는다. 맹물만 끓던, 모두가 잠들어 먹지 못한 그날의 저녁 식사는 동생들에게 희망의 식사였다고. 혹자는 시즈위의 행동을 '희망 고문'이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생들이나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그날의 식사를 희망의, 전설적인, 아름다운 식사였다고 추억한다.

동생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시작된 시즈위의 희망 식사는 어려움을 희망, 아름다움, 전설로 추억할 수 있도록 한 탁월한 선택이자 지혜의 발현이었다. 이야기 장면마다 아이들의 감정이 표정에 잘 드러난 그림도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위기의 고개를 넘는 지금, 『우리 가족 최고의 식사!』를 통해 서로를 보듬으며 마침내 오늘이 아름다웠다고, 전설이라고 기억할 수 있도록 사랑과 지혜를 배워보면 어떨까?

남지민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