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창원의 기록여행] 어린이는 애새끼가 아니다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 가
  • 가

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50년 5월 5일 자
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50년 5월 5일 자
박창원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박창원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8·15 해방과 함께 이 어린이날도 긴긴 첩복에서 소생의 호흡을 내뿜었으니 올해는 제5회째의 어린이날을 맞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야말로 나라의 생명 나라의 보배다. 결코 연장자들의 재롱감이나 애새끼여서는 안 된다. 명일을 위하여 그들 자신을 축복해야 할 것이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50년 5월 5일 자)

해방 뒤 다섯 번째의 어린이날이었지만 기쁨보다는 반성이 뒤따랐다. 혹독한 일제의 탄압 속에서 지금의 어른들이 그 어린 시절을 커온 것처럼 지금의 어린이들 역시 고초를 겪으면서 자라고 있다는 이유였다. 말하자면 어른들이 비참한 현실을 개선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게다가 어른들의 잘못된 인식도 문제 삼았다. 어린이를 놀잇감이나 애새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린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뜻에서 애새끼로 빗댄 듯하다.

그렇다면 어른들의 어린 시절은 어땠고, 어린이들의 고초는 또 뭘까. 어른들이 겪었던 어린 시절은 일제강점기의 어린이날이었다. 어린이날은 방정환과 색동회 주도로 1923년 5월 1일 선포되었다. 몇 해 뒤에는 전국 곳곳에서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일제의 핍박으로 어린이날 행사는 이내 중단되었다. 어린이가 독립운동의 씨앗이 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어린이를 인격체로 존중하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자는 어린이날의 첫 구호는 그야말로 공염불에 그쳤다.

어린이날은 해방 후에 5월 5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어른들이 겪은 참담했던 어린이날의 분위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해방이 되었지만 어린이들에게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한데 선물 하나 사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교육 당국도 가난하기는 꼭 같았다. 기껏 5월 첫 주를 어린이 주간으로 정해 생색을 내는 정도였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더 심한 굶주림에 허덕였다. 밥을 굶다 보니 학교에 다니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대구 지역 초등학생의 절반 정도가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고 굶었다. 게다가 점심을 굶는 아이 열 명 가운데 둘은 아침에 죽을 먹고 오는 아이였다. 또 점심을 굶은 아이 절반은 돌아가서 저녁에 죽을 먹었다. 특식 배급 등으로 결식 문제를 해결해 왔던 일제강점기 때보다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해방 이듬해 첫 번째 맞은 대구의 어린이날 행사는 달성공원 광장에서 열렸다. 대구 시내 초등학교 학생과 중고등학생, 시민 등 수만 명이 참석했다. 다양한 기념 연예가 펼쳐졌고 귓가에 익은 동요가 하루 종일 울려 퍼졌다. 오후에는 공회당에서 초등학교 아동연합학예회가 열렸고 영화관에서는 어린이용 영화가 할인 요금으로 상영됐다. 그야말로 1년에 딱 하루는 애새끼가 아니라 대접받은 어린이의 함성이 진동하는 날이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어린이날의 어린이 함성은 갈수록 힘 빠진 소리로 들린다. 어린이들이 줄어서일까.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재명 대통령의 검찰개혁 구상에 대한 유시민 작가의 비판이 청와대와의 충돌로 이어지며 법적 대응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유 작가는 대통령...
대구시는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 청년들에게 사회연대경제 분야에서 실무를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올해 21억원을 들여 '사회연...
형법 제328조 1항의 친족 간 재산범죄 형 면제 조항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71년 만에 효력을 잃고, 올해 추석에는 친고죄로 일원화된 새...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한군 포로 2명을 한국으로 보냈다고 주장하며 이들의 생포가 쉽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의 입국을..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