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펴냄

이탈리아 베네치아 시가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여전히 한산한 가운데 13일(현지시간) 한 행인이 텅 빈 산마르코 광장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탈리아 베네치아 시가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여전히 한산한 가운데 13일(현지시간) 한 행인이 텅 빈 산마르코 광장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무역 확대와 중국 경제의 성공에 힘입어 세계 경제가 성장하던 호시절은 갔다. 세계 곳곳에서 무역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경제 성장도 둔화되고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도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우려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다.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전 세계를 휩쓰는 코로나19의 등장으로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주류 경제학 통념에 도전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고 부부이기도 한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트테르 뒤플로의 최신간이다. 지은이들은 극빈곤 문제의 해결 방안을 주로 연구해 왔다. 이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목격한 문제들은 부유한 국가가 직면한 문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제 성장, 불평등, 인공지능과 일자리, 기본소득, 정부에 대한 신뢰, 정치적·사회적 분열,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 등은 모든 국가가 공통으로 맞닥뜨린 도전이다.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에 자국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아우성은 미국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 로힝야족 사례에서 보듯 일부 개발도상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은이들은 이민자들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는 정치가들의 주장은 선동에 불과하다는 것을 숫자를 통해 명백히 증명한다. 오늘날 세계가 처한 문제는 이주와 이민이 너무 적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도 떠나지 않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의 재난 상황이 아닌 한 고향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중국산 제품의 대량 수입으로 일자리를 잃은 미국의 노동자들 역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러지 않는다.

이민자가 많이 유입되면 도착국 노동자에게는 해가 될까. 저자들은 '마리엘 보트리프트(Mariel Boatlift)' 연구 결과를 들어 반박한다. 지은이들은 이민자가 상당히 많이 유입돼도 현지인의 고용과 임금에 부정적인 영향은 거의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들은 세금에 관한 통념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세율을 낮추면 일할 유인이 커져 세수가 늘어난다는 이른바 '래퍼 곡선'이나 세금 인하로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법안 모두 잘못됐다는 것이다. 일류 운동선수들은 연봉 상한이 있다고 해서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세율이 올라가면 세금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늘어날지언정 그렇다고 해서 부자들이 일을 덜 한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도 복지 혜택을 많이 받게 됐다고 해서 일을 그만두거나 덜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경제적 인센티브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것도 원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오늘날 국가 정책의 많은 부분이 경제학에 토대를 두고 있지만 그것이 '나쁜 경제학'이라면 온갖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나쁜 경제학'은 부자들에게 막대한 혜택을 주고, 복지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국가는 무능하고 부패한 존재라는 개념과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개념이 퍼지게 하는 토대가 되었고, 그 결과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불평등을, 그리고 맹렬한 분노와 무기력한 패배감이 뒤섞인 상태를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비상사태가 발효 중인 태국 방콕에서 13일 저소득층 사람들이 무료 점심을 배급받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비상사태가 발효 중인 태국 방콕에서 13일 저소득층 사람들이 무료 점심을 배급받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시장은 늘 공정하지 않다"

지은이들이 말하는 '좋은 경제학'과 '나쁜 경제학'은 무엇인가? '좋은 경제학'은 무언가 의문을 제기하는 현상에서 출발하고, 인간의 행동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작동한다고 알려져 있는 이론들에 대해 몇 가지 추측을 한다. 그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 추측들을 검증하고, 새로운 증거와 사실관계에 기초해 때로는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전면 수정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운이 좋다면 해법을 발견한다. 가령, 좋은 경제학이 무지와 이데올로기를 누르고 승리한 덕분에 살충제를 뿌린 모기장을 아프리카에 지원할 수 있었고, 말라리아로 인한 아동 사망을 절반 이상 줄였다.

지은이들은 모든 경제 주체가 완벽하게 합리적이며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이상적인 모델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경제학을 언제나 경직적인 현실의 세계로 끌고 내려와 당면한 이슈들을 해결하는 데 활용한다.

결과적으로 시장이 늘 공정하고, 용인 가능하고,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리라는 믿음은 합리적이지 않다. 지은이들은 책 전체에 걸쳐 그러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가령, 경직적인 경제에서는 시장에만 맡겨 둘 게 아니라 정부가 개입해서 이주를 촉진해야 사람들이 실제로 이주를 해 이득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주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생계와 존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터전에 머물 수 있도록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심화되는 승자 독식의 세계에서는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사이에 격차가 점점 벌어지게 되는데, 모든 사회적 결과를 오로지 시장에 의해 결정되게 놔둔다면 이들 사이의 차이와 간극은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

지은이들은 자신들의 지식이 불완전하다고 인정한다. 심지어 경제학자들이 빠른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고 실토한다. 648쪽, 2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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