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태양광 패널로 뒤덮인 푸른 산과 들을 지키자

예천 고평들 내 논 바로 옆에 태양광발전소 축사가 들어서면서 태양광 지붕 그늘이 논 3분의 1일 가리게 됐다. 윤영민 기자
예천 고평들 내 논 바로 옆에 태양광발전소 축사가 들어서면서 태양광 지붕 그늘이 논 3분의 1일 가리게 됐다. 윤영민 기자
윤영민 기자
윤영민 기자

대한민국 푸른 산, 푸른 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푸른 산 푸른 들'이라는 동요가 전래(傳來) 동요가 될지도 모르겠다. 최근 몇 년간 태양광 발전시설이 무서운 속도로 이 땅의 산과 들을 초잠식지(稍蠶食之·누에가 뽕잎을 먹듯이 점차 조금씩 침략하여 먹어 들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잠식지란 사자성어 그대로다. 태양광 발전시설이 지역의 산과 들을 조금씩 침략하고 있다. 기자가 나고 자란 경북 예천 고평들에도 태양광 발전시설 축사가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매일신문 5월 26일 자 8면)는 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탈원전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신재생에너지라는 명분을 방패 삼은 태양광 발전시설은 먼저 산을 잠식했었다.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에 따른 산지 훼손 면적은 2016년 528㏊에서 문 정부 출범 이후 2017년 1천434㏊, 2018년 2천443㏊로 크게 늘었다. 축구장 6천40여 개 규모다.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로 인한 산지 훼손 규모가 수치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정부는 산지 태양광 발전시설 허가 기준을 강화했다. 경사도는 당초 25도 이하에서 15도 이하로, 산지 전용 영구허가는 일시허가로 변경됐다. 최대 20년이 지나면 산지를 원상복구하라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정부가 태양광 난개발 우려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내놓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업자들은 비상하게도 대안을 찾아냈다. 산지 개발에 제동이 걸리자 태양광 발전시설의 인기는 건축물로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 기존 건축물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갖출 경우 전력 거래 시 가중치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사업자들의 관심은 더욱 집중됐다.

그 결과 수십 수백 년간 농지로 이용되던 들(野)까지 태양광 발전시설이 침식하기 시작했다. 절대농지에는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설 수 없지만 농지 내 준공된 건축물만 있다면 그 위로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지보다 사고에 안전하면서 대규모로 개발이 가능하고 전력 거래 가중치까지 적용되다 보니 농지에 축사, 재배사 등 영농을 목적으로 한 건축물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건축물 지붕 위에는 어김없이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되고 있다.

단순히 보면 농업용 건축물 지붕 위에 조성되는 태양광 발전시설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영농과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 듯도 싶다.

그러나 이 단순한 생각은 태양광 발전시설 축사가 들어선 농지를 직접 둘러본 뒤 바뀌었다. 지난달 찾은 예천 고평들 축사 대부분은 태양광 시설을 갖춰 완공됐거나 건립 중이었으나 소를 사육할 만한 시설은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사육시설이 갖춰진 축사도 있었지만 큰 규모가 민망할 정도로 소의 수가 적었다. 소를 사육하기 위해 지어진 건축물이 아닌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를 위해 마련된 뼈대 같았다.

마을 주민들은 "고평들에 축사 허가를 낸 사람들은 모두 외지인이고 태양광을 목적으로 왔다"면서 "정작 자신들은 소도 직접 키울 생각이 없는지 축사를 임차할 사람만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속을 들여다보면 이 사업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 영농을 목적으로 건축 허가를 받지만 실제 목적은 태양광 개발에 있다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을 방패 삼은 태양광 발전시설이 영농 발전이라는 위장막까지 덮어쓰고 산지에서 농지까지 넘어와 난개발을 부추기고 있다.

탈원전 정책이 빛을 보기 위해선 태양광 난개발 방지책도 내놔야 한다. 이대로는 푸른 산과 들의 훼손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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