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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말 한마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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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미 작곡가

박성미 작곡가
박성미 작곡가

언제 봄이 오나 했더니 벌써 여름이 성큼이다. 지나가버린 시간의 그리움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설레임이 동시에 밀물처럼 밀려온다. 누가 6월의 마음을 찔렀기에 하늘은 끝없이 푸르고, 산마다 푸른 나무가 가득할까. 저토록 자기의 모습을 필사적으로 나타내는 풍경이 가득한 여름. 정신없이 달려온, 그리고 달려갈 시간을 더욱 뜨겁게 달구는 여름이지만, 그 붉은 열정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둬야 하는데 걱정이다.

나의 휴대폰 연락망에는 대략 천 명이 넘는 연락처가 있다. 그들의 프로필 사진에는 각각의 순간들이 담겨져 있고, 그 순간들은 다양하기도 하다. 어떤 이는 일상이 즐겁고, 어떤 이는 슬프며, 사진에도 감정이 담기듯 그들의 상태 메세지에 현재의 상황들이 읽히기도 한다.

한때 나의 상태메시지는 '망각'이었는데, 낮고 깊은 체념이랄까. 잊고 싶은 일이 아니라 기어이 잊을 것이라는 선포 같은 느낌이었다. 그 단어에서 오는 슬픔을 말하기보단 '망각' 이라는 음악에 담긴 서서히 침잠하는 듯하지만 끈질기게 추동하는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이상한 '생기'를 말하고 싶었고, 그게 '나' 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일종의 도전장이었다.

그쯤 내가 즐겨 들었던 음악인 피아졸라의 망각은 1984년에 완성된 작품이다. 대중음악 혹은 천한 음악이라는 편견에 쌓인 그의 음악은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로 인해 클래식 장르로 인정받게 된다. 피아졸라의 '망각'은 그가 작곡한 마지막 음악으로 가장 애절하고 환상적인 탱고음악, 음과 음 사이의 숨까지 끌어와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떠한 눈치도 편견도 신경 쓰지 않은 듯한 이 음악을 피아졸라 자신도 가장 사랑한 음악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그가 끝까지 음악을 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이 있다. 못다한 꿈을 펼치려 파리로 유학을 떠나게 도는데 거기서 바로 '블랑제' 선생을 만난다. 한 서적에서 짧지만 많은 뜻이 내포된 그들의 대화를 발견했다.

"너는 작곡을 잘하는데 감정이 없어"
"넌 무슨 음악을 주로 했니"
"탱고"
"한곡 연주해 보겠니?"
"이게 피아졸라야 절대로 멈추지마, 너다운 음악을 해야지."

열등감에 빠져있던 피아졸라는 선생님의 이 말을 통해 탱고 음악을 클래식에 입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태어난 '누에보 탱고' 천한 음악이라고 치부했던 탱고음악이 피아졸라를 통해 콘서트홀에 당당하게 세워졌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흘렀지만, 오히려 더 뚜렷하고 위대하며, 강렬하게 기억되고 있다. 나다운 음악을 할 때 최고의 음악이 되고, 음악적 견해가 견고해 질 때, 진정한 나의 음악이 된다. 나답게 살 때 , 내가 잘하는 것을 하며, 블랑제 선생처럼 누군가의 목표를 그리고 자신감을 세워줄 '말 한마디' 건네줄 수 있는 넉넉한 맘까지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멋질 것이다. 그 마음의 준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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