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맙습니다" 칠곡군, 한국전쟁 참전국 에티오피아에 마스크 지원

자발적 주민 기부 통한 보훈 행보 눈길
백선기 군수 "호국평화 도시로서의 정체성 공고히 할 터"

칠곡군은 지난 19일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관을 방문해 군민 기부로 마련한 마스크 3만장 등 코로나19 방역물품과 손편지 700여 통을 전달했다. 칠곡군 제공
칠곡군은 지난 19일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관을 방문해 군민 기부로 마련한 마스크 3만장 등 코로나19 방역물품과 손편지 700여 통을 전달했다. 칠곡군 제공

'호국평화의 도시' 경북 칠곡군이 6·25전쟁 참전국인 에티오피아에 코로나19 지원을 통한 '보훈 행보'에 나서 눈길을 끈다. 특히 올해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지방자치단체의 공적 자금이 아니라 순수 주민 기부를 통해 진행된 참전국 지원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 에티오피아는 6·25전쟁에 6천37명을 파병했으며 참전용사 중 138명이 생존해 있다.

◆6·25전쟁 70주년 맞아 결초보은

칠곡군은 지난 19일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관을 방문해 군민 기부를 통해 마련한 마스크 3만장 및 손소독제 250병 등 코로나19 방역물품과 손편지 700여 통을 전달했다. 지원품은 이달 중 수송돼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 및 유가족에 전달될 예정이다.

마스크 지원은 백선기 칠곡군수가 지난 4월 22일 '6037 캠페인'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6천37명의 헌신에 결초보은(結草報恩)하는 의미로 6천37장의 마스크를 마련해 전달하자는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코로나19 확진자 속출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진단장비와 마스크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백 군수는 자신의 SNS 계정에 '#6037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지원을 위한 마스크 기부 동참을 호소했다. 스카프와 수건, 목도리 등으로 마스크를 대신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사진도 함께 올렸다.

백 군수는 SNS를 통해 "6·25전쟁에 참전한 6천37명의 에티오피아의 젊은이 가운데 122명이 전사하고 500여 명이 상처를 입었지만 253차례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며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켰다"며 "이제는 우리가 그 은혜에 보답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듯, 어려울 때 실천하는 나눔이 진정한 나눔"이라며 "70년 전처럼 6천37명이 함께하는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자"고 당부했다.

◆군민과 각계각층의 동참 물결

칠곡군 석적읍 한솔아파트 부녀회가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들에게 기부할 마스크를 제작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칠곡군 석적읍 한솔아파트 부녀회가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들에게 기부할 마스크를 제작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칠곡군은 군청 로비와 8개 읍·면사무소에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마스크 기부함'을 설치했고, 백 군수의 '6037 캠페인'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어졌다.

칠곡군 인문학마을 주민 20여 명은 '칠곡형 보훈 마스크' 200장을 손수 제작했다. 원단에서부터 감잎 염색, 재단, 박음질, 코 받침 와이어 끼우기까지 모든 공정이 주민 손을 거쳤다. 석적읍 우방신천지아파트 부녀회, 한솔아파트 부녀회도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을 위해 필터 교체형 수제 마스크를 제작해 기부했다.

또 뇌병변 장애 1급인 장윤혁(45·왜관읍) 씨는 휠체어를 타고 마트와 약국 등을 돌며 마스크 365장을 구해 기부했다. 6·25참전유공자회 칠곡군지회도 마스크 기부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과 마음을 나눴다.

가수 소향은 칠곡군의
가수 소향은 칠곡군의 '6037 캠페인'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칠곡군 제공

이밖에도 8개 읍·면 주민과 공무원은 물론 한국전통가요협회 대구지회와 가수 소향 팬카페 등 전국 각계각층에서 마스크 기부가 잇따랐다. 가수 소향은 이달 초 '6037 캠페인' 홍보대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캠페인은 성공적이었다. 캠페인 시작 2개월 만에 목표로 했던 수량의 5배가 넘는 3만장 이상의 마스크가 모아졌다. 마스크뿐 아니라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손편지도 속속 도착했다.

최삼자 할머니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게 일일이 영어 손편지를 썼다. 칠곡군 제공
최삼자 할머니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게 일일이 영어 손편지를 썼다. 칠곡군 제공

석적읍 최삼자(73) 할머니는 외국에 있는 며느리 도움을 받아 138명의 생존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게 일일이 영어로 된 손편지를 썼고, 경기도 용인외대부고 학생들은 에티오피아 공용어인 암하라어로 마치 그림을 그리듯 손편지를 작성해 칠곡군에 보내왔다. 칠곡군의 초등학생과 중학생들도 영문 손편지 453통을 써 칠곡군에 전달했다.

에티오피아 현지어로 손편지를 쓴 경기도 용인외대부고 학생들. 칠곡군 제공
에티오피아 현지어로 손편지를 쓴 경기도 용인외대부고 학생들. 칠곡군 제공

◆칠곡군과 에티오피아의 인연

지난 19일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는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커피를 흘러내리듯 담아주는 에티오피아 고유의 '커피 세리머니'가 펼쳐졌다. 귀한 손님은 백선기 칠곡군수 일행이었다.

쉬페로 시구테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는 "이번에 전달된 마스크가 코로나19 바이러스로부터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과 그 후손들을 지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칠곡군은 이번 마스크뿐 아니라 7년째 에티오피아 지원사업을 이어오며 보훈에 대한 확고한 신념 및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감사를 표했다.

백 군수는 "당연한 일을 한 것일 뿐"이라며 "앞으로도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답했다.

칠곡군은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전투 중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가 치러졌던 곳이라는 점에서 '호국평화'를 도시 정체성으로 삼고 다양한 관련 사업들을 펼쳐오고 있다. 에티오피아 지원사업도 그 일환이다. 칠곡군은 2014년부터 에티오피아 티조 지역을 '칠곡평화마을'이라 명명하고 초등학교 2곳 신축, 식수 저장소 4기 및 식수대 11기 건설, 새마을회관 건립 등 환경개선 및 주민 소득증대 지원사업을 실시해 왔다.

지난 2월에는 칠곡 순심연합총동창회 기부로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관에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동상을 세웠다. 매일신문 칠곡군자문위원회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회에 식용유 등 물품을 보냈다.

백선기 칠곡군수
백선기 칠곡군수

◆(인터뷰)백선기 칠곡군수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님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이 마스크가 없어 스카프 등으로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6037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6·25전쟁에 육군 전투병을 파병한 에티오피아의 값진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스크 전달은 그 고마움과 은혜를 우리가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백 군수는 무엇보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및 유가족들에게 마스크를 전달하게 돼 더욱 뜻깊고 흐뭇하다고 평가했다.

"참전용사들이 우리가 보낸 보훈 마스크로 코로나19를 잘 이겨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6·25전쟁 참전 당시 청년들이 지금은 세월이 흘러 노병이 됐지만 저희 마음 속에는 항상 청년이며 영웅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는 마스크 기부에 동참한 칠곡 군민과 전국의 기부자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익명의 기부자에서부터 장애인과 어르신 등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들까지 마스크 나눔에 동참해주셨습니다. 동참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에티오피아 지원사업과 6037 캠페인까지 군수로서 제가 한 일이라고는 칠곡 군민을 대표해 에티오피아를 방문하고 진심 어린 마음을 전달한 것 뿐입니다."

백 군수는 특히 에티오피아 지원사업에 대한 지속 의지도 분명히 했다.

"칠곡군은 지난 7년간 호국과 보훈의 가치를 올곧게 세우며 이역만리 에티오피아에 칠곡평화마을의 현판을 내걸었습니다. 앞으로도 에티오피아에 대한 지원을 계속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호국평화의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칠곡군은 6·25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로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호국의 도시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칠곡군은 호국과 평화를 테마로 한 관광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관련 사업들도 병행해 대한민국 제일의 호국평화 도시로 자리매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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