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는 말이 있다.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쇠붙이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의미다. 실로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한 마디의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거나, 약점을 잡아내서 궁지로 몰 때도 쓰인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의도치 않게 불길이 번져, 많은 이들에게 회자될 때 당사자로서는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이런 경우는 흔히 볼 수 있지만, 매번 안타깝기 그지없다.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호타루'라는 영화가 있다. 2차 대전 당시 조선 청년이 가미가제로 차출되어 전장에서 산화한 이야기다. 세월이 흘러 그 유골을 우리나라에 전달하러 온 일본 할머니가 한 소녀에게 이런 대사를 남긴다. "꼭 너만 했었지. 너무 어렸는데, 나라를 위해 '만세. 만세'를 외치면서 깃발을 흔들며 떠나보냈지. 죽인거야. 진짜 부모였다면 조국을 위한다며, 떠나보낼 수 있었겠어? 어떤 일이 있어도 내 목숨을 대신했더라도 떠나보냈겠어?" 할머니는 조선청년이 떠나기 전까지 숙식을 제공해주었던 여관 주인이었다.
이용수. 그녀는 위안부 피해자다. 수년 전만 해도 종군(從軍)위안부라 불렸다. 지원한 것도 아닌데 종군이 웬 말인가. 그녀의 이름 뒤에는 '할머니'가 따라붙는다. '할머니'가 위안부의 대명사도 아닌데, 누가, 언제부터 이렇게 관용어를 만들어냈을까. 이제 위안부 생존 피해자들의 수가 손발의 개수에도 못 미친다. 역사의 증인들의 사라지는 순간들을 세월호 사건 때처럼 묵도만 할 것인가. 어떤 이유에서도 그녀를 비난할 명분은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직을 수행할 때, 회계 장부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것이 잘못인가. 아니면 시민기금으로 지급된 1억원이 문제인가. 일본 정부로부터 건너온 어용자금 10억엔을 거부한 것이 잘못인가. 정의기억연대의 주인은 위안부 피해자여야 한다. 왜 주인이 실무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가.
지난 5월 7일 1차 기자회견을 할 당시 네티즌들의 반응은 냉혹했다.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정도의 악성루머와 댓글들이 인터넷에 난무했다. 일본에게 위안부 관련해서 그들의 당위성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축은 그나마 약하고, '치매' '배후세력' 등 한 개인의 의식을 난도질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심지어 1998년 8월 22일 대만에서 치러진 일본군 장교와의 영혼결혼식조차 문제 삼았다.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이름도 모르는 청년. 가미가제 특공대로 차출되기 전날 그녀에게 '네가 조국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죽어서도 너를 지켜주겠다'고 한 그와 영혼결혼식을 올린 것이 무엇이 잘못된 일인가. 당시 조국은 그녀의 목숨을 버리라 했지만, 그는 그녀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살아생전에 못다 이룬 인연을 맺어보자는 것도 문제가 되는가.
옳고 그른 것은 가리면 된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하고, 오해한 부분이 있다면 풀면 된다. 한 개인의 삶을 함부로 폄하하는 건 잘못이다. 처음도 아니지 않는가. 병자호란 때 힘없는 나라 덕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살아 돌아온 여성들을 '화냥년'이라 매도했던 나라가 부끄럽지 않은가. 이제 두 번 다시 부끄러운 나라, 부끄러운 국민이 되지 말자. 제 자식이 끌려가는데, 뒷짐 지고 있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매도해서는 안 된다. 조국을 구하는 데 초개(草芥)처럼 목숨을 던진 의사들의 얼굴 하나 없는 화폐를 사용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그녀를 다시 사지로 내몰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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