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앵무새 살리기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작가 하퍼 리가 쓴 '앵무새 죽이기'(1960)에는 다음의 일화가 나온다. 흑인 가장 톰 로빈슨은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지만 백인인 로버트 이웰과 그의 딸이 '꾸며낸' 사건에서 강간범으로 기소된다.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가 톰이 누명을 썼다고 적극 변호했으나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과 흑인은 정직하지 못하다는 편견의 벽을 넘지 못하고 유죄 평결을 받는다. 강간범은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다. 낙담한 톰은 상고심 재판을 기다리지 않고 교도소 담장을 넘어 탈출하려다 총을 맞고 숨진다.

이 작품에서 '앵무새'는 무고(無辜)하지만 누명을 쓰고 차별과 편견 때문에 희생되는 사람을 나타낸다. 세월이 흘러도 유사한 일들은 반복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종 간의 갈등이, 우리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차이와 무조건적 제 식구 감싸기가 앵무새를 만들어내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념 간의 갈등이 좀처럼 희석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무조건적 편들기와 반론에 대한 무조건적 공격이 또 한 마리의 앵무새를 희생시킬까 걱정이다. 이용수 할머님과 그 반대편 간의 갈등이 지속되면서 연로하신 할머님이 건강이라도 상하실까 염려된다.

할머님의 주장은 간단하다. 지난 수십 년간 정의기억연대와 그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들어온 수입과 지출이 투명하고 적법하게 처리되었는지 조사하고, 잘못이 있으면 처벌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시위 방식을 바꾸고 한일 학생들 간의 교류를 늘리며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실시하자고 했다. 미래를 위한 할머님의 제안은 사건의 핵심인 회계 문제를 우선 정리한 후에 생각해볼 문제라고 본다.

검찰은 회계 문제를 흔들림 없이, 철저하고 엄정하게 처리해 주길 바란다. 관련 단체에 비리가 있다면 비리를 찾아 발본색원하는 것이 올바른 위안부 운동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법률의 문제를 정치 문제화하거나, 관련 단체의 비리를 바로잡자는 것을 마치 운동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으로 호도(糊塗)하거나, 핵심이 아닌 지엽적인, 근거도 없는 인신공격으로 할머님의 상처를 덧나게 해서는 안 된다.

바라보는 국민들의 넋을 잃게 하는 반대 측의 허황된, 너무나도 허황된 주장은, 사건을 할머님의 기억 문제로 덮으려는 치매설, 기자회견을 사주 받아서 했다는 배후설, 개인적·정치적 욕심에서 했다는 질투설, 그리고 할머님 지지자들은 친일파라는 토속왜구설로 요약된다. 이것들은 사건의 본질과 전혀 관련이 없을뿐더러 근거 없음이 충분히 해명되어 더 이상의 언급은 불필요하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흙탕물을 일으켜 본질을 가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용수 할머님의 빙청(氷靑) 같았던, 얼음처럼 푸르렀던 청춘은 일본군에 의해 부서졌지만, 할머님은 얼음처럼 푸른 기상으로 아흔두 해를 살아오셨다. 할머님의 주름진 얼굴과 빛나는 눈을 보면, 세찬 비바람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선비의 지조, 절개가 보인다.

또한 할머님을 보면, 문경새재의 상처 난 소나무들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소나무들은 아직도 허리에 깊은 'V'자 상처를 품고 있다. 일제가 송진을 채취해 간 자국이다. 할머님을 끌고 간 바로 그 태평양전쟁에 쓰기 위해서였다. 소나무들은 상처를 안은 채 근 여든 해를 견뎠고 할머님들도 그러했다. 상처 난 나무를 비난할 수 없듯이 상처 입은 할머님을 탓할 수 없다. 나라 잃은 설움을 가장 처절하게 겪으신 분이 누구시던가? 할머님을 그만 이용하기 바란다. 우리는 무고한 앵무새를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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