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시청자들을 안방 1열에 집합시켰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백미는 단연 조이서였다. '막강 캐릭터'라는 수식이 어울리는 그는 권력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정의를 끝까지 관철시키며, 짝사랑으로 시작해 결국 박새로이를 '내 남자'로 만드는 당찬 매력으로 대중의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그런 그가 어쩌면 소시오패스라는 설이 나오며 대중은 또 한번 놀랐다. 소시오패스는 악랄한 범죄자에게나 붙는 형용사가 아니었던가?
지금껏 우리는 흔히 소시오패스·사이코패스를 범죄에 연관시키곤 했다. 그러나 하버드 의과대 정신과 교수 마사 스타우트 박사는 "범죄와 관련된 소시오패스는 고작 20%뿐"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신간 '이토록 치밀한 배신자'에서 소시오패스는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심리적 폭행을 가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현실 속 소시오패스는 어떤 사람일까
소시오패스란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일종으로 특성은 여러가지로 묘사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 등 목표 달성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으며, 매우 계산적이다. 자신의 본심과 감정을 숨긴 채 순진한 사람으로 위장하면서 남을 이용하는 데 능하다. 이 모든 특성을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특성은 한 마디로 '양심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트라우마 생존자들을 상담하면서 소시오패스에게 심리·정신적 폭행을 당해 트라우마의 늪에 빠지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소시오패스들은 범죄자가 아니라 가족, 동료, 이웃의 모습으로 지척에 존재한다. 통계적으로 따지면 전세계 인구의 100명 중 4명 꼴로 소시오패스라고 한다. 박사는 임상 경험을 토대로 터득한 사례를 제시하며 이들로부터 우리가 상처받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하는 것이 절실한 문제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현실 속 소시오패스 유형을 다섯 사례를 중심으로 소설처럼 풀어나간다. 잘생기고 똑똑한 '스킵'은 뭐든지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죄책감 없이 남에게 피해를 주며, 무자비한 성격으로 사회에서 성공을 거머쥐었다. '도린'은 동료의 미모, 지성, 성공 등 빼앗을 수 없는 것을 빼앗고 싶어한다. 그저 동료의 경력에 한 줄 스크래치를 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루크'는 부인인 시드니에게 기생해 안락한 삶만을 추구하면서도 한치의 부끄러움조차 갖지 않는다. '한나의 아버지'는 부인과 딸을 트로피처럼 여기며 자랑할 거리가 있을 때만 신경 쓴다. 작은 갈등을 격렬한 말다툼으로 키우는 '틸리'는 모든 갈등의 시초가 되고 모든 이웃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이런 이들이 대표적인 현실 속 소시오패스다. 더구나 소시오패스는 사회가 발달할수록 더욱 발현되기 쉽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기반으로 한 전통 사회와 달리 현대 사회는 개인적인 성취를 높이 평가하며 타인을 밟고서라도 우뚝 일어서라고 부추긴다. 어쩌면 현대 사회는 소시오패스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 최적의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소시오패스와 양심은 동전의 양면
소시오패스와 양심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 책은 여러 사례를 통해 소시오패스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면서 양심의 문제까지 심도 깊게 다룬다. 도덕, 철학, 종교, 심리학적 관점에서 인간 양심의 기원과 발전, 효과, 필요 이유 등을 총망라해 짚어준다. 이론을 적절한 사례와 함께 소개해 읽기 어렵지 않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게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은 양심을 갖고 있지 않을까? 즉 소시오패스의 원인은 무엇일까? 소시오패스는 타고난 본성이기도 하며 양육의 결과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밝힌다. 여러 연구를 종합해보면 소시오패스는 대뇌피질 수준에서 감정적인 자극을 처리하는 기능에 변형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전적인 신경 발달의 차이 때문일 가능성이 크고, 신경 발달의 차이는 양육환경과 문화적인 요소에 의해 보완되거나 악화될 수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유년기 학대나 애착장애로 소시오패스의 환경적 원인을 설명하기에는 살짝 부족하며, 소시오패스를 만드는 결정적인 환경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소시오패스를 알아보는 방법도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소시오패스를 알아보는 최고의 단서는 바로 '동정 연극'이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동정을 받으려고 연기한다면 그는 소시오패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예컨대 소시오패스 남편은 아내를 마구 때린 뒤 오히려 자기 머리를 감싸 쥔 채 괴로워하며 "순간의 화를 참지 못했다. 이런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식으로 군다. 이런 동정 연극은 소시오패스가 양심 없이 자기 멋대로 굴면서도, 상대방과의 사회적 관계를 본인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수법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피해자들에게 심리 상담 효과를, 아직 당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예방할 수 있는 효과를 보장한다. 저자는 머릿말에서 "책에 나온 내용들은 실제 개인의 신상 정보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비밀 보장은 심리치료의 절대 원칙이며 상담을 받은 모든 사람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조치했다"고 언급한다. 356쪽, 1만6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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